어느새 25년이나 지난 삼풍백화점 사고의 맨 얼굴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장기 상영 중인 <KBS 다큐인사이트 -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사진)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KBS 제공

어느새 25년이나 지난 삼풍백화점 사고의 맨 얼굴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장기 상영 중인 <KBS 다큐인사이트 -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사진)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KBS 제공

유하 감독의 <강남 1970>은 강남 개발이 시작되던 시절, 땅과 돈 그리고 욕망을 그리고 있다. 허허벌판, 백사장이 금싸라기 땅으로 바뀌는 동안 누군가의 욕망은 돈으로 환전되었다. 개발독재, 개발행정이라는 말이 일반화된 만큼 영화 속에서 개발은 곧 폭력과 협잡의 결과물이었다. 영화 <아수라>의 가상 인물, 악덕시장 박성배(황정민)의 모습이나 용역깡패들과 손을 잡은 부패 검사 우종길(이성민)이 등장하는 <검사외전>에서도, 늘 땅은 일그러진 욕망의 종착점이었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1960년대 이후 약 20년간을 휩쓸었던 개발독재 모습의 잔상은 영화 속 미장센으로 남아 있다. 영화 <오아시스>에서 종두(설경구)가 달리던 청계고가도로, 야한 비디오 테이프 공급처였던 <품행제로> 속 세운상가는 어느새 고증의 자료가 되어버렸다. 서울은 정말이지 너무도 빨리 변해 간다.

난개발 하면 떠오르는 가장 중요한 역사적 장면 중 하나가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이다. 1995년 발생한 이 사건은 다양한 영화와 소설, 드라마를 통해 환기되곤 했다. 성수대교가 무너졌다는 뉴스에 놀랐던 <타짜>의 고니는 다음 해 서울에서 백화점이 무너졌을 땐 더 이상 놀라지 않는다. 황석영은 <강남몽>에서 이 사고를 다뤘고 정이현은 소설 <삼풍백화점>을 통해 누군가의 사적인 기억으로 참사를 재구성했다. 김대승 감독의 <가을로>의 멜로드라마적 장애물도 삼풍백화점이었다.

세월이 흘러 어느새 25년이 된 삼풍백화점 사고의 맨 얼굴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장기 상영 중인 <KBS 다큐인사이트 -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공영방송인 KBS에는 로 필름(raw film)을 포함한 방대한 아카이브가 보존되어 있다. <모던코리아>는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까지의 기록물들을 뒤져, 경제적 부강을 이유로 묵인되었던 시절을 재구성하고 있다. 김우중의 세계 경영, 사교육 열풍 등을 보다 보면 한 가지 처참한 사실이 침전된다. 각기 다른 이야기들이지만 결국 개발독재의 무참한 손길이 모든 비극 아래 자리 잡고 있다는 것 말이다.

각하님 보기 좋은 서울을 만들기 위해 아파트를 대량 공급하기 시작한 것은 불도저라고 불렸던 김현옥 시장 이후였다. 그는 1966년부터 1970년까지 4년 동안 서울을 레고 블록처럼 쌓고 허물며 마음대로 주물렀다. 그가 1969년부터 3년간 지은 아파트는 2000동 10만호에 이른다. 중요한 것은 그가 서울시장에서 물러난 이유 역시 공격적 난개발 때문이었다는 사실이다. 김현옥은 1970년 4월8일 오전 6시40분에 발생했던 와우아파트 붕괴사고 때문에 시장직에서 물러난다. 와우아파트는 고작 준공 4개월 만에 무너졌다.

그런데 삼풍백화점도 김현옥 시장과 무관하지 않다. 김현옥 시장이 밀어붙였던 을지로 상가 건설에 군에서의 인연을 빌미로 삼풍이 들어왔고, 이를 바탕으로 강남 서초구 군용지를 불하받았으며 바로 그 땅에 삼풍아파트와 삼풍백화점을 세웠다. 중앙정보부의 인맥이 502명의 사상자를 만들어낸 1995년 사건의 바닥에 깔려 있다.

여의도, 용산, 영동 등을 개발하기 시작했던 김현옥이 머릿속에 둔 서울의 최대 인구수는 500만이었다. 김승옥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야행>의 주인공은 지금 반포지구로 짐작되는 단층 아파트에 산다. 은행에 근무하는 올드미스, 자유분방한 싱글라이프를 사는 그녀는 비밀연애 중인 사내 동료와 동거 중이다. <겨울여자>의 세련된 이혼남이 사는 공간도 아파트이다. 1970년대 영화에서 아파트는 현실의 주거공간이 아니라 욕망과 환상의 공간이다. 500만도 많다던 서울에 1000만이나 몰려들어 살게 된 것도 아파트 덕분이거나 아파트 때문이다. 서울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렇게 늘 만원이고 욕망은 아파트에 쌓인다. <기생충>의 희비극 역시 주거 안정의 욕망에서 비롯되지 않았던가? 누군가에겐 자산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삶의 기본적 터전인 집, 아파트. 그걸 단순히 개인의 욕망에만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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