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삶의 풍경들

최준영‘책고집’ 대표

내 친구 곰돌이는 나이트클럽 웨이터입니다. 열아홉 살 때부터 20여년 동안 그 일만 해왔으니 업계에선 베테랑 대접을 받습니다. 생활력 강한 베테랑도 코로나19 팬데믹을 피해 가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고용형태가 불안한 데다 고용보험조차 없습니다. 유흥 쪽 종사자에겐 피해 구제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습니다. 장기 휴업으로 생계가 곤란해서 물류회사 일용직 일을 시작했는데 하필이면 거기서 확진자가 나오는 바람에 그만두었습니다. 막노동과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악착같이 일해서 번 돈으로 여동생 둘을 결혼시켰을 만큼 곰돌이는 책임감도 강한 친구입니다. 정작 본인은 결혼을 못했고요. 삶이 팍팍해 가정을 꾸릴 엄두가 나지 않는답니다. 우리 곰돌이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 유흥 쪽 일을 한다고 해서 모두가 유흥하며 사는 건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안전망은 한층 촘촘해져야 합니다.

최준영‘책고집’ 대표

최준영‘책고집’ 대표

연초 공직사회는 신속하게 움직였습니다. 신속하게 도서관과 평생학습관의 문을 닫았고, 각종 문화예술 공연과 전시를 취소했으며, 복지관의 운영을 중단했습니다. 신속함에 더해 집요함까지 보여주더군요. 근무지엔 어김없이 방역관리인을 상주시켰고, 감시카메라를 통해 출입하는 사람들을 물 샐 틈 없이 통제하더군요. 최근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 2단계가 발동되면서 잠시 문을 여는 듯하던 공공기관들이 다시금 앞다투어 문을 닫기로 했다지요. 옳은 결정을 하신 겁니다. 무엇보다 당신들의 안전과 건강이 중요하니까요.

저는 작은도서관을 운영합니다. 몇 개월 동안 관공서의 관심을 듬뿍 받고 있습니다. 수시로 공문과 전화를 받습니다. 방역을 철저하게 하라, 되도록이면 사람 많이 모이는 행사는 자제해 달라, 언제부터 언제까지는 모임을 중단해 달라 등등. 근데 참 희한한 일입니다. 그렇게나 도서관의 방역과 시민의 안전을 걱정하는 분들이 어떻게 6개월이 넘도록 한 번도 나와보지 않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앗, 작은도서관은 그분들이 보기에 안전이 검증된 공간이 아니었군요. 안 오시는 게 아니라 못 오시는 거였네요.

안전안내문자를 받는 일이 일상화되었습니다. 수시로 날아드는 안전문자를 확인하면서 가족과 이웃과 우리 공동체의 안전과 안녕을 기원합니다. 안전문자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문자와 지자체 문자로 나뉩니다. 중대본 문자는 재난의 전반적인 추이를 알려주는 동시에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할 방역수칙 등을 안내합니다. 지자체 문자는 지역 내 확진자의 발생을 알리면서 확진자의 동선을 안내합니다. 안전문자는 받을 때마다 긴장감이 고조되지만 동시에 우리 주변에 이토록 열심히 일하는 분들이 있다는 걸 확인하면서 자부심도 갖게 됩니다. 중대본과 지자체의 방역담당 공직자에게 새삼 고마움을 표합니다.

어떤 이에겐 안전문자가 곧 악몽입니다. 지난 4월 지인이 운영하는 가게의 상호가 안전문자에 들어 있더군요. 지역 내 확진자가 하필 거길 다녀갔다는 겁니다. 그 후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4개월이 지난 지금 지인은 가게 운영을 접었습니다. 안전문자 하나가 모든 걸 무너뜨린 거죠. 단골들도 등을 돌렸고, 어쩌다 들어온 손님도 확진자가 다녀간 가게라는 걸 알면 나가버리기 일쑤였답니다. 시청에 하소연도 해봤답니다. 방역조사관의 요구에 최대한 협조하며 철저히 방역했으니 이젠 안심하고 방문해도 좋은 곳이라는 후속 문자 한 번쯤 날려줄 수 없느냐고. 그러나 그분들이 그렇게 한가하지(?) 않습니다. 애초 안전문자는 안전이 아니라 불안과 위험을 배달하는 문자일 뿐입니다.

지난 몇 개월 보고 듣고 체감한 코로나 시대의 우리네 삶의 풍경들입니다.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이 어디 내 친구 곰돌이뿐이겠습니까. 부디 이 땅의 모든 곰돌이가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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