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노동자에 ‘쉼’을 허하라

박진웅 편의점 및 IT 노동자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활동이 제한되자 비대면(언택트) 산업이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e커머스, 스트리밍, 게임, 배달플랫폼 등 정보기술(IT) 산업이 대표적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비대면 서비스를 통해 위험하고 불편한 시기를 한결 슬기롭게 이겨내고 있다.

박진웅 편의점 및 IT 노동자

박진웅 편의점 및 IT 노동자

IT 산업의 힘은 대단하다. 방 안에서 다양한 콘텐츠로 여가시간을 즐길 수 있고, 영상통화나 화상회의 등을 통해 사람들과 정을 나눌 수 있다.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택배로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하루 이틀이면 집 앞에 도착하는 택배 덕에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를 유지하는 것이 한결 수월했다. 이런 편리함 이면에는 나 대신 위험을 감당한 노동자들이 있다. 바로 택배기사들이다.

올 상반기 택배회사들은 물량 폭증으로 큰 이익을 보았다. CJ대한통운의 경우 상반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1.3% 증가했다. 기사당 평균 배송 물량은 30%가량 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택배가 하루이틀 내에 잘 도착했으니 택배기사들의 노동 강도는 더욱 강해진 것이다.

택배기사들은 건당 약 700~800원의 수수료를 받는다. 올 상반기 기준 택배기사들은 하루 평균 400건 이상을 배송한다고 한다. 이들은 물품을 분류해서 차에 싣는 ‘까대기’ 노동으로 보통 네다섯 시간을 쓴다. 점심 즈음 출발해서 하루에 400개 이상의 물건을 처리하려면 쉬지 않고 분당 약 1개꼴로 택배를 배송해야 한다. 이렇게 일하면 오전 6~7시에 출근해 저녁 8~9시가 넘어 퇴근한다.

이러한 탓에 올 상반기에만 과로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택배기사가 12명이다. 가혹한 노동 환경 탓에 쉬지도 못하고 병원에도 갈 시간이 없어서 죽었다는 기사가 연일 쏟아진다. 택배기사는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 휴가도, 야근수당도 없다. 주 40시간, 최대 52시간의 근로기준법과도 무관하다. 설령 아파서 쉬게 되면 대체배송을 위해 배송수수료의 1.5배가 넘는 건당 1200~1300원을 지불해야 한다.

택배노동자들은 노동 환경 개선을 끊임없이 국회와 본사에 요구하고 있다. 특히 이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배송수수료의 인상이 아니라 노동자로 인정받아 적절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것이다. 수수료조차 나오지 않는 까대기 노동,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현실, 대리점의 물량 압박 등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는 것이다.

택배사업은 IT 산업의 확장과 함께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20년이 지나도 크게 높아지지 않는 택배비는 싸고 편리한 서비스를 누리게 해주었지만, 그 가격에는 택배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스며들어 있다. 우리 가게의 택배를 맡아서 배송하시던 기사님의 말이 생각난다. “그래도 죽어라 하면 이 일이 돈은 됩니다.” 정말로 죽어라 해도 벌이가 시원찮은 직업들에 비하면 차라리 낫다는 자조였다.

가을에는 명절까지 있어 택배노동자들은 벌써부터 쏟아질 물량에 불안함을 감추지 못한다. 많은 물량을 소화할수록 더 많은 돈을 버는 구조지만, 그렇다고 해서 목숨을 잃어가며 일할 수는 없다. 한 주에 100시간 넘게 일하고 휴가가 하루도 없는 이들이 월 400만원, 500만원을 버는 것은 목숨을 파는 것이나 다름없다.

20대 국회에서 택배기사들의 삶을 보호하려는 생활물류서비스법안이 발의됐지만 야당의 반대와 산업계의 이해관계에 부딪혀 폐기됐고, 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8월 중 재발의 계획을 밝힌 상태다. 나는 싸고 좋은 택배서비스를 자주 이용하는 고객 입장에서 택배노동자들이 더 안전하고 적절한 환경에서 일하기를 원한다. 조금 더 높은 요금을 지불하고, 하루 이틀 늦게 물건을 받더라도 괜찮다. 내가 이용하는 서비스가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시대에 남들보다 더 큰 위험을 부담해야 하는 이들에게 더 나은 존중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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