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영화고, 영화가 미국인 이유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영화 <맹크>는 오슨 웰스와 함께 <시민 케인> 시나리오 작업을 한 허먼 L 맹키위츠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 <맹크>는 오슨 웰스와 함께 <시민 케인> 시나리오 작업을 한 허먼 L 맹키위츠에 대한 이야기다.

특정 지명이 산업을 대표할 때가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그런 곳이 두 군데 있는데 하나는 실리콘밸리, 다른 하나는 할리우드이다. 실리콘밸리가 IT 산업 등 최첨단 하이테크 산업을 상징한다면 할리우드는 영화이다. 영화가 할리우드고, 할리우드가 영화이다. 역사가 짧은 나라가 미국이라지만 그 역사성을 아카이브로 잘 보존하고 있는 나라 역시 미국이다. 미국이 세계 최고의 영화강국이 된 것도 같은 맥락에 있다. 자본과 기술이 뛰어나기도 하지만 미국은 영화를 통해 역사를 기억한다. 오락성 상품으로 만든 상업적 작품도 많지만 기록적 가치를 넘어 역사와 철학을 담은 작품도 많다. 미국이 곧 영화이고 영화가 미국이기도 한 셈이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2020년 아카데미 후보 중 많은 작품은 아마도 넷플릭스 작품으로 채워질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국은 점진적으로 새로운 플랫폼으로서 넷플릭스에 이미 문을 개방하고 있었다. 현재 넷플릭스 상영 중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이하 트라이얼) <힐빌리의 노래> <맹크>는 여러모로 할리우드가 왜 영화의 대명사인지를 수긍하게 해준다.

<트라이얼>은 1968년 닉슨 대통령 당선 이후 시카고에서 있었던 ‘정치재판’에 관한 이야기이고, <힐빌리의 노래>는 러스트벨트라고 불리는, 대개 트럼프 지지층과 맞물리는 미국 중하위층 백인 가정의 이야기를 다룬다. 두 이야기 모두 실화를 소재로 했는데, <트라이얼>은 검찰이 정치적 목적을 갖고 기소했을 때, 또 사법부가 이 세력에 동조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선명히 보여준다. 흑인차별, 권위주의, 공산주의 혐오와 같은 다양한 이야기들은 미국의 가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영화적 재현을 통해 보여준다.

<힐빌리의 노래>는 지금도 아메리칸드림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매우 보수적 영화이다. 약물중독 어머니 밑에서 예일대 로스쿨까지 가는 데 성공한 주인공에겐 졸업 자체가 대단한 미션이 된다. 사실 미국의 교육은 ‘유리바닥’으로 표현될 만큼 계층적 대물림의 대상이 됐다. 영화의 주인공은 아무리 접시를 닦아도 예일대 로스쿨 학비를 댈 수 없다고 한탄한다. 좋은 인턴 자리도 이미 부모의 인맥을 통해 선점돼 있다. 정치학자 로버트 D 퍼트넘이 말했듯 사는 곳이 곧 지위가 된 계급 아파르트헤이트 공간에서, 주인공이 약물중독 어머니에게 발목 안 잡히고 나름의 삶의 궤도를 유지하는 게 영화적 서스펜스가 된다. 삶 자체가 긴장의 연속인 것이다.

<맹크>는 1930~1940년대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의 정점에서 일했던 시나리오 작가 허먼 L 맹키위츠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오슨 웰스와 함께 <시민 케인>의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시민 케인>의 주인공 ‘찰스 포스터 케인’은 당시 언론 재벌로 군림하던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당시 미국인이라면 누구라도 케인이 허스트임을 알 수 있었다. 살아있는 권력이었던 허스트인 만큼 시나리오를 영화화하는 데 그리고 상영하는 데 상당한 압력과 실력이 행사되었다.

영화 <시민 케인>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거대 언론사를 지배하던 케인은 “내겐 사람들이 뭘 생각할지에 대해 결정할 권한이 있소”라고 부르짖는다. 프레임을 만들고 퍼뜨리면, 케인의 생각이 현실이 된다고 믿었고, 실제 그렇게 된 사례도 많았다. 케인뿐만이 아니라 실존 인물 허스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옐로 저널리즘, 황색 저널리즘이라는 말을 탄생시킨 장본인 역시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이다. 문제적인 것은 당시 금권으로나 정치력으로나 최고 정점에 있었던 권력자를 영화적 재현을 통해 비판하고, 상징화하고, 지적할 수 있었던 영화의 저력이다. 1930년대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은 수많은 문제를 낳기도 했지만 당대 가장 큰 권력에 대한 선명한 지형도도 남긴 셈이다.

맹크와 오슨 웰스는 언론이 가진 힘을 알고 있었다. 뉴스가 만들어내는 연출된 감정들이나 가짜정보들이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미국엔 트럼프식의 거짓 선동을 따르는 대중들도 있지만 그런 거짓과 맞서는 언론과 그것을 재현하는 영화적 저력도 있다. 이 혼동 속에서도 나름 미국이 유지되고 있다면 바로 이 오래된 자정능력 덕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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