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일터를 위해

박진웅 IT 노동자

인생이 바다를 항해하는 것이라면, 노동은 배의 노를 젓는 일일 것이다. 망망대해의 풍랑에 흔들리고 부딪힐지언정 우리는 각자의 노를 저으며 있는 힘껏 삶의 조타수로 살아간다. 때로는 틀어진 방향에 배의 키를 꺾기도 하고, 느려진 속도에 몸이 으깨져라 노를 젓기도 하지만 그렇게 파도를 헤쳐 나가는 과정 덕에 삶은 한층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박진웅 IT 노동자

박진웅 IT 노동자

우리가 자는 시간을 제외한다면, 성인이 되어 인생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대부분 일터일 것이다. 현대사회의 인간이란 이렇게 노동과 삶을 아름다운 것이라고 애써 찬미하지 않고서는 견디기 힘들 만큼 오랜 시간을 노동에 파묻혀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인간으로 태어난 존재의 숙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우리는 묵묵히 하루하루를 각자의 노동으로 채우며 살아남기에 여념이 없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산재사고와 삼성 반도체 백혈병 산재사고. 내가 본격적으로 산업재해에 대해 인식하게 된 것은 아마 이 두 사고를 접했을 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고된 노동으로 삶을 채우면서도 늘 아름답게 살아가고자 했던 젊은이들이 잘못된 노동환경 때문에 병들고 목숨을 잃는 사고 앞에서, 나는 우리 사회가 감히 노동을 찬미할 수 있는 것인가 되묻곤 했다. 우리의 삶 대부분을 보내는 일터가 고될 수는 있을지언정, 목숨을 앗아가는 위험에 이토록 무방비로 노출되는데 어찌 뻔뻔하게 노동을 아름답다 말할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선거의 승리를 위해 노동자의 안전 담보를 약속했다. 정치 공약 대부분이 허망하듯 정권이 바뀌어도 산재는 줄지 않았다. 얼마 전에도 한 청년 노동자가 부실한 안전관리와 부당한 업무지시에 안타까운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었다. 슬프게도, 그나마 청년이 죽어서 뉴스에 기사 한 줄이라도 난다는 말을 하는 것이 21세기 대한민국의 노동현실이다.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산재사고로 건강을 잃고 목숨을 잃는다. 산재사고로 기록되지 않은 이들까지 포함한다면 결과는 더욱 참담할 것이다. 여전히 이 땅에선 과로사나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질병은 산재로 인정받기 어렵고, 수많은 이주노동자나 저임금 하청노동자들은 고용의 불확실성 때문에 아무 보상도 못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정부가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안전하지 않은 노동환경을 개선해 나가기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을 펼치지 못한 것에 대해선 비판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문화가 안전을 위협한다. 빠르고 싸고 좋은 것을 위해서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정서가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이상 안전에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것은 낭비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산업재해에 대한 규제가 외국에 비해 약하지 않은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산업재해가 반복되는 것은 이러한 문화적 특성과 결합한 최저가, 최단 시간이 일반화된 산업 환경에도 원인이 있다.

대한민국의 산업화는 노동자의 피땀으로 이뤄졌다는 말은 결코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진실로 많은 사람들이 일터에서 건강과 목숨을 대가로 바쳐 발전을 이뤄낸 것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이다. 그동안 고도성장을 위해 모두 짐짓 모른 체 해온 산업화의 대가를 지금 청산하지 않으면 산업재해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빠르고 싸고 좋은 것이 안전해지기 위해서는 조금 느리고 비싸져야 한다. 안전에 대한 비용을 감당하고자 하는 사회 전체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삶의 대부분을 일터에서 보내는 우리에게 안전한 노동환경은 무척 시급한 문제다. 늘 기업 경쟁력과 낮은 비용, 빠른 목표 달성을 위해 희생한 노동자들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산업현장에서 원칙이 지켜지도록 부담을 나누고 감시해야 한다. 이 땅의 모든 일꾼들이 같은 비극을 겪지 않도록 하겠다는 우리의 다짐이 말뿐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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