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없애면 작은 정부 된다고?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

최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외교와 통일 업무가 분리된 것은 비효율적이고 통일부는 성과가 없는 조직이라며 통일부 폐지를 주장하였다. 현 정부 대북정책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이해되나, 통일부 폐지를 주장하는 근거가 불명확하고 일관성이 없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

통일부 존재의 근거는 분단의 극복과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우리 헌법에 있다. 19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와 2005년 제정된 남북관계발전법은 이러한 헌법정신을 반영하여 남북관계를 국가 간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일반적 국제관계 업무를 관장하는 외교부와는 별도로 통일과 남북관계 업무를 관장하는 정부 부처로서 통일부를 두는 것이다.

통일부를 폐지하고 외교부에서 통일 업무를 관장하게 되면 북한은 외교부가 상대하는 여러 국가 중 하나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 정부의 통일 의지 약화를 스스로 인정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며, 이에 따라 국제사회는 남북관계에 대한 우리의 독자적 지위와 한반도 통일 문제에 대한 우리의 주도적 역할에 대해 회의적 반응을 보일 것이다.

서독도 분단 이후 통일을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민족의 과제로 인식하였다. 정부 부처로서 내독관계성을 설치하여, 양독 간 다양한 교류와 협력을 촉진하고 통일을 준비하였다. 이런 노력을 통해 냉전 해체 과정에서 독일은 통일을 완수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전범국가라는 원죄 때문에 강제로 분할되었던 독일도 통일을 이루었는데, 식민 지배의 피해자이자 전후 강대국 간 경쟁 구도 속에서 분단의 아픔을 겪은 우리가 스스로 통일을 외교로 넘겨서 국제문제화한다는 것은 분단에 대한 역사인식의 부재를 드러낸 것이다. 패전국이었던 독일의 경우 통일을 위해 전승 4개국의 승인을 필요로 한 반면, 한반도 통일은 전적으로 남북 당사자의 결정에 달려있으며, 국제사회의 이해와 지지는 보조적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남북관계를 단순히 효율성을 기준으로 외교의 틀에서 다루는 것은 평화통일이라는 민족의 염원을 저버리는 처사이고, 우리 헌법과 법률 등 실정법 체계와도 부합하지 않으며, 한반도 문제에 대한 우리의 지위와 역할을 스스로 축소하는 것이다.

작은 정부론을 이유로 통일부 폐지를 거론하는 것도 불합리하다. 1980년대 이후 서구를 중심으로 정부와 사회의 상대적 역할 재정립에 대한 철학적 논의가 진행되었다. 신자유주의가 득세하고 효율과 성장이라는 자본주의 경제제도의 가치가 재강조되면서 민간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사상이 확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 역할의 제한과 축소를 내세운 정부개편 방안으로 작은 정부론이 등장했다.

따라서 정부와 사회의 역할 배분에 대한 다양한 의견 수렴과 공감대 없이 단순히 업무 성과가 부족하다는 주장에 근거하여 정부 부처 몇 개를 폐지한다고 작은 정부가 실현되지 않는다. 더구나 통일 업무는 민간과 시장에 대한 규제 사무가 아니라 평화, 안보, 공동체 형성에 관한 것으로 대표적 공공영역에 속한다. 통일부를 없앤다고 작은 정부 운운하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다.

통일부는 미래를 만들어가는 부처이다. 근시안적인 효율성과 성과주의의 잣대로 평가하기보다는 오히려 장기적 관점에서 업무를 확대하고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 ‘푼돈을 아끼려다 큰돈을 잃는다(penny wise and pound foolish)’는 영어 속담이 있다. 단기적인 작은 효율에 집착하여 미래의 큰 가치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작은 정부론은 현재의 세계적 흐름과 맞지 않는다. 1980~1990년대 서구를 중심으로 많은 국가가 작은 정부를 추구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작은 정부론과 신자유주의는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 지금은 대부분 국가가 코로나19 등 감염병과 기후변화 같은 신안보 위협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 역할을 늘려가는 추세이다.

업무 성과가 부족하고 역할이 없다면서 즉흥적으로 정부 부처 폐지를 언급하는 것은 경솔한 태도이다. 통일부가 북한에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어서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정략적으로 보인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와 우리 국민 서해 피격 사건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지만, 당시 통일부는 깊은 유감을 표하고 강력히 항의하였으며, 북한의 행위를 반인륜적 행위로 강력히 규탄한 것으로 기억한다. 분단 고통 해소, 한반도 평화공존과 공동번영, 평화통일이라는 역사적 책무 완수를 위해 보다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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