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의 누나 이경진 ‘미완의 소원’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박래군의 인권과 삶]이석기의 누나 이경진 ‘미완의 소원’

이경진씨는 이석기 전 의원의 누나였다. 그는 지난 3월 암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이석기 전 의원의 무죄를 확신했고, 그의 석방을 위해 “모든 것을 걸겠다”고 한 말을 실천으로 옮겼다. 그는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청와대 앞 노숙농성을 1000일 넘게 하던 중 암에 걸렸다. 청와대 앞에서 쓰러져 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손쓸 수 없는 지경이었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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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도 잃었던 그가 병상에서 바랐던 마지막 소원은 감옥에 갇혀 있는 동생의 손을 잡아보는 것이었다. 간절함을 담은 귀휴 요청들이 여러 경로로 정부 당국에 답지했지만, 그때 이미 9년9개월의 형기 중 7년7개월을 산 장기수에게 귀휴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얼마 살지도 않았고, 아직 재판이 다 끝나지도 않은 이재용에 대해서는 가석방, 사면을 검토한다는데도 그랬다. 이석기 전 의원에게 2박3일의 짧은 귀휴가 허락된 것은 누나가 눈을 감은 뒤였다.

누나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나온 이석기 전 의원을 조문 가서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그의 손을 잡아보았다. 충혈된 눈으로 그는 한잠도 못 잤다고 했다. 드러내지 않으려 억누르고 있는 그의 표정 속에서 슬픔과 함께 분노를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었다.

나는 이석기 전 의원을 그가 구속되기 전에 만난 적이 없다. 20년 전 민혁당 사건으로 구속되었을 때도 인권운동가로 그의 석방 운동을 지원했고, 그때도 그의 누나 이경진씨를 만났다. 이경진씨는 열 살 위의 셋째 누나다. 그 사건 때 그의 노모는 암투병 중이었다. 그때 어머님이 돌아가셨고, 그의 넷째 누나도 고통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20년 전에는 어머니, 셋째 누나, 넷째 누나가 있었는데, 20년 후에는 나만 있네.”

누나의 장례를 마친 뒤 마석 모란공원에서 이석기 전 의원이 남긴 말이다. 그는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 사건이 났을 때, 이성적 판단보다는 증오와 혐오가 압도적이었다. 통합진보당 분열 과정을 겪고 난 다음이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그에게 들씌운 혐의들은 터무니없었지만, 그때의 마녀사냥 분위기로 매일 쏟아지는 당국의 발표와 보도에 대해 어떤 반론도 제기하기 어려웠다.

박근혜 정권이 ‘국정원 대선 댓글 사건’으로 위기에 몰리던 상황이었다. 김기춘씨가 대통령비서실장으로 들어가고 바로 터진 사건이었다. 과거 수많은 공안사건을 겪어봤던 이들조차 조작 가능성을 말하지 못했다. 90분간의 정세 강연과 토론 내용이 녹취록으로 한 언론에 독점 보도된 것은 결정적으로 마녀사냥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동료 의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방탄국회를 수시로 열어왔던 국회는 이번에는 신속하게 체포동의안을 재석 의원의 압도적 다수 찬성으로 가결했고, 현역 의원은 국회에서 체포되어 수감되었다. 이석기의 편을 들었다가는 나도 당한다는 그런 위기감과 공포가 작용했다. 그로부터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은 브레이크 없이 질주해 갔다.

이석기 전 의원이 받은 형기는 모두 9년9개월이다. 그에게 처음 씌운 혐의인 내란음모 사건은 무죄로 판명났다. ‘RO’란 이름의 혁명조직은 실체도 발견되지 않았다. 사건 증거로 법정에 제출된 강연회 녹취록은 수백 군데 결정적인 조작이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국정원 프락치의 진술도 엇갈렸다. 그런데도 처음으로 적용된 ‘내란선동’ 혐의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더해 엄청난 형을 선고했고, 확정했다. 이뿐만 아니라 이 사건이 확정되기도 전에 헌법재판소는 서둘러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하고, 소속 의원들의 의원직을 박탈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후 양승태 대법원장과 박근혜 정부의 부정한 거래가 있었음이 드러났다.

그런데도 이석기 전 의원은 8년째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 앰네스티와 미국의 인권보고서에 그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해 자의적으로 구금되었다고 지적받고 있다는 점을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그의 계속된 구속 상태가 정의롭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통령의 사면권은 이재용과 같은 이들을 가석방이나 사면을 하라고 있는 게 아니라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 아닌가.

광복절 특사든, 가석방이든 이석기 전 의원이 감옥 문을 나와 누나의 산소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이석기 전 의원은 석방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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