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적이지 않은 약속

인아영 문학평론가

약속할 때 우리는 필연성을 약속한다. 무언가가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지, 무언가가 무작위로 일어날 것이라고 약속하지는 않는다. 그래야만 한다. 그 이외일 수는 없다. A는 A여야만 하지, A일 수도 있고 B일 수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필연성의 법칙. 이것이 새끼손가락을 마주 걸면서 우리가 서로에게 기대하고 요구하는 것이다.

인아영 문학평론가

인아영 문학평론가

그런데 시의 세계에서는 조금 다르다. 필연성의 법칙을 무너뜨리고도, 아니 무너뜨려서 오히려 두터운 약속에 도달하기도 한다. 유진목의 시집 <작가의 탄생>(민음사)에 실린 ‘시항’이 그렇다. “새벽에 배가 하나 있을 거야. (…) 배는 내가 있는 곳에 도착할 거야.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배야. 너는 조타실 바닥에 앉아서 배가 출발하고 도착하길 기다리면 돼. 그러면 거기에 내가 있을 거야. 만약 내가 없다면 중간에 무언가 잘못된 거야. 그래도 괜찮아. 너는 도착할 거고 나를 만나거나 만나지 못할 거야. 너는 배에서 내리면 돼. 바다가 끝나고 육지가 시작될 거야. 나는 있거나 없겠지만 너의 삶은 계속될 거야. 나는 잘못돼도 너의 삶은 계속될 거야. 두 발로 걸어서 가고 싶은 곳으로 가면 돼. 거기서 사는 거야. 잊지 마. 새벽에 배가 하나 있을 거야. 너는 타거나 타지 않을 수 있어. 네가 타지 않아도 나는 거기에 있을 거야. 네가 없는 배가 오면 나는 거기에 있을 거야. 네가 없는 배와 함께 잠시 동안 거기에 있을 거야.”

이 시는 새벽에 배를 타고 오면 만나자는 긴 약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무도 모르게 배를 준비했으니 바다를 건너 육지에 내리라고, 그러면 거기에 내가 있을 거라고, 거기서 너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거라고. 그러나 배를 타고 나에게 오라는 명령형, 혹은 나에게 와달라는 청유형의 문장은 없다. 대부분의 문장이 미래를 예견하는 ‘-거야’로 종결된다. 배가 있을 거야, 내가 있을 거야, 육지가 시작될 거야, 너의 삶은 계속될 거야. 여기에는 강제나 부탁이 없다. 단지 미래에 배가 있을 것이라는 예측과 자신이 그곳에 있겠다는 의지가 있을 뿐이다.

이상하게도 이 약속에는 필연성이 없다. 의지가 담긴 예측은 하지만 만남을 확신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과 만날 수 없다는 불가능성이 똑같은 크기로 나란히 놓인다. “나를 만나거나 만나지 못할 거야.” “나는 있거나 없겠지만…” “너는 타거나 타지 않을 수 있어.” 우리가 만날 수도 있고 못 만날 수도 있다면, A일 수도 있고 B일 수도 있다면, 필연성이 아닌 우연성을 제시한다면, 이 약속은 대체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그러나 서로 반대되는 조건이 병렬되면서 강조하는 것은 따로 있다. 그것은 어떤 조건에서도 너의 삶은 계속될 거라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너는 괜찮을 거라는 것. 그렇기에 이 병렬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무의미한 말놀이가 아니라 예측되는 상황을 고려하여 너의 불안을 덜어내고 안심을 건네는 과정이다. 너는 나와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는 의존성이 아니라, 너는 내가 없어도 괜찮다는 독립성에 대한 약속이다. 그러니 이 약속은 필연성보다 큰 믿음을 약속한다. 이 믿음은 맑고 단단하다.


Today`s HOT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