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청년을 착취하는 사회

최민영 경제부장

폭염주의보가 발령됐던 지난주 인천에서 전단 아르바이트 중 사망한 20대 청년의 사인은 열사병이라고 했다. 성실했으나 가난했던 이의 죽음은 청년들이 내몰린 취업도 실업도 아닌 ‘경계’의 고단함을 드러낸다. 네모난 음식가방을 짊어진 배달원들, 편의점 계산대의 청년들, 공장과 물류창고에서 일하는 많은 단기노동자들이 더 나은 일자리와 미래를 희망하며 코로나19의 무게까지 가중된 불확실성을 버텨내는 중이다. 이 같은 경계청년들의 규모는 지난해 기준 청년 확장경제활동인구 약 482만명 가운데 실업자를 포함해 121만명에 달한다. 청년 4명 가운데 1명이다. 올해 취업준비생은 85만9000여 명으로 역대 최고치다.

우리 사회는 이들을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해법을 모색하고 있는가. 말잔치만 화려하다. 기득권은 절박한 경계청년들이 내몰린 현 구조에 별다른 각성이 없는 것일까.

최민영 경제부장

최민영 경제부장

대선을 앞둔 정치권은 청년층에 현금살포를 앞다퉈 공약하고 있다. 연간 100만원 청년기본소득, 군 전역 장병에게 3000만원 지급, 스무살 때 1억원 지원 등이 쏟아져 나왔다. 청년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미래를 꾸리고 안정감을 얻을 일자리인데, 정치권에는 나라곳간을 지렛대로 선거 승리를 꾀하는 포퓰리즘만 난무한다. 어려운 청년에게는 사회안전망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일자리 문제 해결 없이는 찢어지고 곪은 상처에 작은 반창고를 붙이는 격이다.

줄어든 일자리를 놓고 경쟁이 격화된 청년세대에서 분노는 구조가 아닌 엉뚱한 타깃을 향하고 사회통합은 흔들리는데, 이 와중에 일부 정치인들은 혐오를 지렛대로 자신의 지지기반 다지기를 꾀한다. 논의의 장에서 ‘갈라치기’가 요란해지면 진짜 문제는 간편하게 은닉되고 정치는 일하지 않아도 비판받지 않는다. 분열을 먹고 자란 정치의 대가는 결국 그 사회를 사는 청년들이 치르게 된다. 로마 시민을 정치적으로 우민화한 ‘빵과 서커스’와 점점 비슷해지는 양상이다.

안정적 일자리 부족에 따른 숨은 경제비용이 전가되는 것은 청년과 그들의 가족이다. 부모가 돈을 벌어 자녀의 취준비용을 댄다. 과거 한국의 가족이 유아·아동·노인 돌봄의 국가복지 공백을 메워왔던 것처럼 현재는 산업격변기의 청년 일자리 감소와 고용유연화에 따른 충격을 대신 받아내는 중이다. 기업들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기존 정해진 기간에 한꺼번에 뽑는 공개채용 방식을 필요인력만 수시채용하는 쪽으로 바꾸면서 취준기간은 길어지고 돈은 더 많이 든다. 일반기업 일자리가 줄어들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은 올해 취준생 10명 중 3명꼴인 32.4%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족의 경제력에도 기대기 어려운 청년들은 고독사로까지 내몰린다. 전국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 집계에서 10~30대 무연고 사망은 2017년 63건에서 지난해 100건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고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전한다.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N포세대’ 청년문제가 제기된 지 올해로 10년인데 논의는 왜 부진했을까. ‘젊을 적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고도성장기의 케케묵은 고정관념, 그리고 ‘공장에 일자리가 넘친다는데 청년들이 힘든 일을 기피한다’는 기성세대의 편견도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본지 ‘경계청년’ 기획취재 과정에서 확인한 것은 대기업 하청에 재하청으로 내려갈수록 미래도 기술도 보이지 않기에 청년들이 기피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였다.

노동시장 경계에 있는 약자들의 목소리가 좀처럼 전달되지 않는 것 또한 문제다. KBS 미디어비평에 따르면 언론에 등장하는 청년 70% 이상이 서울 거주로 분석됐다. 전체 청년의 10% 미만인 서울 소재 유명 4년제 대학 학생이 일반 청년을 과다대표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과 언론에 유명대학 출신의 ‘엘리트’ 비율이 높아지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가진’ 사람들이 자기 주변의 사람들만 보고 그들을 표준으로 삼는 것이다. 능력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약자들이 좀처럼 자기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것 역시 원인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하지만 목소리가 없다고 그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의 터널 끝에 양극화가 본격적으로 드러날 때, 희망고문에서 깨어난 경계청년들은 외쳐 질문할지 모른다. “내 일자리는 어디 있는가? 기성세대는 무엇을 했는가?” 미안하다는 말은, 해야 마땅한 일을 하지 않은 어른들이 할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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