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축음기에 빼앗긴 수명 10년 ‘십년감수’

엄민용 기자

뭔가에 깜짝 놀랐을 때 “어이쿠, 십년감수했다” 따위의 말을 한다. 십년감수(十年減壽), 말 그대로 ‘목숨이 10년은 줄었다’는 의미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이지만, 이 말이 생겨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120여년 전인 1897년이다.

그해 미국 공사이자 의사인 앨런이 우리나라에 축음기를 들여와 어전에 설치하고는 당시 명창이던 박춘재를 불러 고종과 대신들 앞에서 판소리를 부르게 하고, 이를 축음기에 담는다. 박춘재가 기다란 나팔에 입을 대고 판소리를 구성지게 뽑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나팔통에서 박춘재의 판소리가 그대로 흘러나오자 모두들 화들짝 놀란다. 그때 고종도 깜짝 놀라며 한마디 한다. “춘재야, 네 기운을 기계에 빼앗겼으니 네 수명이 십년은 감해졌겠구나”라고…. 십년감수라는 말이 생겨난 유래다.

이렇듯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는 누군가가 처음 만든 사실이 알려진 것들이 꽤 많다. 30세를 뜻하는 ‘이립(而立)’이나 60세를 가리키는 ‘이순(耳順)’은 공자가 처음 얘기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70세를 뜻하는 고희(古稀)는 두보가 지은 시 ‘곡강(曲江)’의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구절에서 따온 말이다. 이 중 ‘고희’는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음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인생칠십고래희’란 “사람이 일흔 살까지 살기란 예로부터 드문 일이다”를 뜻하는데, 기대수명 100세 시대인 오늘날에 70세는 아직도 청춘이기에 하는 소리다.

우리말에는 나이와 관련한 낱말이 많은데, 그 가운데는 너나없이 쓰지만 열에 아홉은 잘못 쓰는 말도 적지 않다. ‘터울’도 그중 하나다. ‘터울’이란 “한 어머니의 먼저 낳은 아이와 다음에 낳은 아이와의 나이 차이”를 뜻하는 말이다. 즉 “어머니가 같은 자식들 간의 나이 차이를 나타낼 때”만 쓸 수 있다. 배다른 형제자매 사이에도 쓸 수 없는 ‘터울’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 사이에 쓰는 일이 흔한데, 이럴 때는 그냥 ‘○ 살 차이’로 써야 한다. 직장 동료에게 “나이가 한 살 터울이니 그냥 친구처럼 지내자” 따위로 얘기하는 것은 정말 큰일 날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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