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자유의 본원적 축적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젊은 기자가 결국 묻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언론 개혁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최근 사방에서 저항을 받고 있는 이른바 ‘언론개혁 법안’에 대해 이런저런 비판을 나누다 나오는 질문이다. 나는 반갑게 맞장구친다. 지금 그 질문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언론인이 연대해서 스스로 길을 내야 합니다. 다만 늙은 기자를 믿지 마세요. 직을 떠난 자들이 최악입니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우리 언론은 지금 ‘자유의 본원적 축적’ 시기를 겪고 있다. 젊은 기자는 비유컨대 영국 산업혁명 당시 미숙련 소년 노동자와 같다. 열악한 노동 조건에서 죽도록 시달리며 일하지만 자기 노동력을 근근이 보존할 정도만 보상받는다. 어쩔 수 없이 고달프게 일하다가 채 성장하기도 전에 다치거나 병을 얻는다. 요령 좋게 살아남아 관리직이 되면 바로 그 소외된 노동을 강요하는 일을 맡는다.

지금 논란 중인 징벌적 손해배상 법안은 엄격한 처벌을 도입해서 불량 기사를 줄이겠다는 의도에서 나왔다. 그러나 애초에 소외된 노동이 만연한 곳에서 처벌만으로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없다. 굶기고 걷어찬다고 새로운 기사를 기획하고, 글쓰기를 강화하고,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잘하는 역량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소외된 환경에서 시민의 인격권을 존중하는 글쓰기가 나올 수 없다. 그것은 기자들이 연대하여 작업 조건을 개선하고, 자신의 사회적 영향력을 돌아보고, 서로 나쁜 행실을 지목해서 비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쓰는 자들은 함께 고민해 보자. 어떻게 해야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을지. 언론에 대해 불만스러운 시민들도 그저 쥐어패려고만 하지 말고 같이 고민해 보자. 어떻게 해야 좋은 언론에 제대로 보상할 수 있을지. 나는 언론과 소통을 탐구하는 학생으로서 일단 다음 세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째, 사건의 자취를 담은 기사를 보고 싶다. 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뉴스에 그치지 않고, 유사한 사건들이 언제 어떻게 일어났는지, 연관성이 없는지 기록한 기사 말이다. 난 곡절이 없으면 기사가 아니라 생각한다. 그때는 그렇게 결말이 나고, 저때는 저런 논란을 낳았지만, 이번에는 뭐는 같고 또 뭐가 다른지 밝힌 기사를 읽고 싶다. 우리 기자들은 습관처럼 ‘팩트’라고 말하고 다니는데, 제발 그 발음도 어려운 사실이라는 게 실은 역사적 궤적을 지니며, 모든 역사는 차분히 돌아보는 시선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둘째, 동료의 기사를 제대로 인용했으면 한다. 외신이나 통신사 기사는 물론 인터넷 동영상이라도 제대로 출처를 밝혀서 기사에 담아야 한다. 언론 활동에 대한 가장 즉각적이고 폼 나는 보상은 동료 기자들의 인용이 되어야 한다. 우리 언론에 정당한 인용 규범이 없기에 기자들이 담합해서 쓰는 관행을 만들거나, 서로 베끼며 쓰더라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낙종만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우리 언론은 뭔가 잘못해도 한참 잘못하고 있다.

셋째, 고유한 문체와 편집을 갖춘 언론사가 나왔으면 좋겠다. 기사란 글이고 말이다. 말과 글을 만드는 데 고유한 사상과 문체를 갖추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것을 업으로 삼았다고 할 수 있을까. 개별 기사가 다른 기사와 다르고, 연속한 보도가 다른 언론의 보도와 차별되고, 쌓여온 말과 글의 전통이 고유한 자취를 보여야 한다. 그래야 스스로 가치를 주장할 수 있고, 후배들에게도 가르칠 게 있다. 고유함을 자산과 정체성으로 삼기 위해서라도 신생 언론사는 동영상이든 데이터든 새로운 문체와 편집을 시험해야 한다.

이렇게 주장해 봐야 내 바람일 뿐이다. 기자들이 스스로 나서서 문제를 제기하고 연대해 해법을 찾지 않는 한 이루어질 수 없는 참견일 뿐이다. 개혁의 이름으로 자유가 정면으로 위협받고 있는 이 시대에 언론인들이 성찰하여 분투하지 않는 한 자유는 축적하지 않는다. 자유의 핵심에 자율적 주체의 성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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