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다

송길영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

서울극장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OTT 서비스가 스트리밍으로 다가오고 바이러스는 한 곳으로 모이는 사람들을 위축시켜 그간의 오랜 영업을 종료한다는 이야기에 문득 예전 추억이 떠오릅니다. 어느 초겨울 바로 그 서울극장에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영화 <사랑과 영혼>의 표를 사러 갔습니다. 다음날 표를 구하려 눈까지 오는 날씨에 한 시간이 넘도록 덜덜 떨다 드디어 차례가 되었지만 막상 제가 선 줄은 당일표를 파는 곳이었습니다. 옆에 비어있던 창구에서 손쉽게 구매하고 허탈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지간히 주변머리가 없어 사람들에게 어떤 줄인지 묻지도 못하고 한참을 서 있었다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그때의 아픈 기억은 무엇이건 몇 번이고 물어보는 오지랖을 내재화하게 만들어 지금 주위의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송길영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

송길영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

요즘 같으면 스마트폰을 꺼내어 동네부터 시내까지 비어있는 자리를 찾아가면 될 터이지만 그때는 한 영화는 한 곳에서만 상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단관상영이라는 지금은 이해되지 않는 시스템으로, 인기가 있는 영화는 표를 구하기 어려워 보고 싶은 날이 오기 전에 영화관으로 가서 줄을 서야 했습니다. 필름의 개수를 한정해서 생산하는 것은 저작권에 대한 가장 확실한 보전방안입니다. 그러다보니 동시 상영을 하는 재상영관은 주변 적당히 거리가 있는 극장과 서로 다른 두 편을 공유했다 합니다. 첫번째 영화가 끝나고 다른 극장에서 필름이 도착하는 동안 사람들은 화장실도 다녀오고 친구와 수다도 떨었습니다.

그 시절 필름은 영사기의 불빛 열기에 녹아버려 화질이 열화되어 스크린에 비가 오기도 했습니다. 그렇더라도 옥상 위 안테나가 태풍에 흔들리기라도 하면 TV 화면도 세로로 줄이 가던 것도 일상다반사여서 그만한 고통은 불평의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동네 극장에서 필름의 마지막이 유실되어 갑자기 클라이맥스에서 불이 켜지며 다 나가라는 말도 들어본 저는 이후 프랑스 예술영화의 급작스러운 종료에도 그다지 놀라지 않을 만한 담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작권에 대해서라면 책 뒤에 저자의 실제 도장이 찍힌 작은 종이들이 붙어있던 시절의 기억도 있습니다. 얼마나 팔린 것인지에 대한 셈이 흐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저자가 일일이 도장을 찍어 돈을 건네받는 방식인 것이지요. 베스트셀러라도 되면 도장 수십만번을 어떻게 찍었을지가 궁금합니다.

최근 큰 서점의 대표님과 점심을 함께하며 들은 이야기는 흥미로웠습니다. 매장에서 만화와 전공서적이 가장 도난이 많다 합니다. 만화야 비닐로 싸여 있어서 서서 볼 방법이 없으니 어린 마음에 그럴 수도 있겠다 했지만 전공서적의 경우엔 공부하는 성인이 훔쳐서 볼 정도로 어려운 것인가 궁금해 여쭤보니 그게 아니라 전문적으로 되팔기를 하려는 분들이었다 합니다. 수천만원대의 서적을 훔친 범인도 있다는 말씀에 분노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예전 대학교 앞 복사가게에서 원서를 통째로 복사한 후 제본까지 해서 팔던 시대를 겪은 사람으로서 그 차이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가 공공연히 그러했으니 더 큰 손해를 작가에게 주었을 터이니까요.

블록체인에 NFT까지 온갖 기술이 선보이는 요즘의 세태는 학교 앞 복사가게에서 교재인 원서를 불법으로 싸게 사고 남은 돈으로 영화를 보러 가던 예전 검은 시도의 원천봉쇄 방안이 아닐까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시스템은 학교를 졸업한 친구가 만들어낼 창의의 정당한 보상이 될 것이니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미래의 자신에게 하는 투자로 연결되는 큰 그림이 그려집니다. 이 시점에서 불현듯 삶이 연결되는 영화 <인터스텔라>가 다시 보고 싶어집니다. 혹은 모든 인연은 그다음 생들까지도 연결된다는 <클라우드 아틀라스>가 더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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