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중 걱정 없는 시간을 만들어라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비 온 뒤, 아침 하늘이라 맑고 푸르다. 뭉게구름이 하얀 솜털처럼 곱고 한라산과 둥근 오름들이 손에 닿을 듯이 가깝다. ‘아! 이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를 인류가 언제부터 누렸으며 언제까지 누릴 수 있을까.’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과학적으로 살펴보면 45억년 지구의 역사 속에서 이렇게 맑은 하늘과 신선한 공기를 만나는 기간도 그리 많지 않았다. 20억년 전 대기 중에는 산소가 1% 정도였고, 그때부터 계속 산소가 증가해서 현재 지구의 공기는 21%의 산소, 78%의 질소, 그리고 0.036%의 이산화탄소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현생인류는 약 20만년 전에 시작된 호모사피엔스가 빙하기를 거쳐 2만년 전 최종빙기 극성기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수많은 시간 속에서 온갖 환경적 고난들을 극복하는 것만으로도 어려웠을 것이다. 거기에 인간들의 끝없는 대립갈등과 약육강식의 전쟁역사는 어리석은 반복이었다. 인류가 아름답고 행복한 정신적 삶의 깊이를 향유하던 시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아침 공양 후 산책을 하다가 인공지능에 관한 박사논문을 쓰고 있는 학생을 만났다. 우리가 얼마나 훌륭한 조건과 행복한 환경에 사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가장 여유로운 시대라는 이야기까지 곁들였다. 인공지능의 시대가 본격화되면 사람이 할 일이 급격하게 줄어 더 많은 여유 시간이 생겨난다고 한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한 세대에 가장 많은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청소년기를 시골과 산에서 살았던 내 기억으로는 연료를 장만하는 시간이 가장 길었다. 겨울 내내 장만하던 땔감시대에서 석유나 전기, 도시가스 보일러를 사용하니 너무나 간단해졌다.

생활은 빨래터 손빨래에서 원터치 세탁기로 쉬워졌으며, 교통수단은 버스에서 KTX와 비행기로 더 멀리, 더 자주 다닌다. 글을 쓰는 것도 원고지에서 노트북으로 쉽게 바뀌었다. 과학으로 인한 생활의 도구가 바뀌면서 하루가 단순해지고 여유 시간이 많아진 것이다.

이 많은 시간들을 ‘맑음’으로 앉을 수 있을까. 고요한 앉음을 생각하면 가끔 2600년 전 보리수나무 아래 석가모니부처님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한다.

그의 앉음은 감각기관의 분별로 인한 욕심이 일어나기 전의 평화로움이고, ‘나’라는 생각에서 생겨나는 마음속 감정들에 얽힘이 없는 자유로움이다. 그 맑음의 상태로 일어나 세상을 만난다면 시간과 공간에 상관없이 모든 만남이 생생한 행복의 시간들이고 지혜의 시간들이다.

시간이 많은 현대인들이 더 여유로움이 없다. 바쁜 일상에 잠시라도 짬을 낼 수가 없다. 분 단위로 나누어 일을 하고 가족이나 친지들 사이에서 분주하다. 게다가 TV, SNS, 라디오, 신문 등 우리의 눈길과 생각을 붙잡아두는 도구들이 끊임없이 유혹한다. 고요하게 차분히 앉아 있을 시간이 없다. 살기 바빠서 나를 돌볼 틈이 없다. 매일매일 샤워할 시간은 있어도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맑은 앉음’의 시간은 없다.

명상과학연구소를 운영하는 분과 미래사회에 대한 통화 중에 “아마 조금 있으면 이런 이야기들이 화젯거리가 될 겁니다. 이번에 삼성에서 나온 신제품 심장을 달았더니 아주 편안해. SK 제품의 폐로 바꾸었더니 하루 종일 뛰어도 괜찮아…. 이렇게 백이십 살까지 사는 시대가 금방 올 겁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재미있기보다는 정신이 아득했다. 3년 전 시골마을 신도 집을 방문했을 때 만난 장면이 떠올랐다. 홀로 사는 90세의 노모가 ‘넘어질 위험이 있으니 혼자서 집 밖으로 나다니지 말라’는 자녀들의 말에 종일 망연하게 TV만 크게 틀어놓고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고 있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과학이 발달하고 인간 수명이 길어져서 시간이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그 여유로움의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오히려 그 많은 시간들을 과거를 회상하며 현재를 부정하거나 미래의 삶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삶의 질을 높게 가지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진종일 망연히 앉아 있으니/ 하늘이 꽃비를 뿌리누나/ 내 생애 무엇이 남아 있는가/ 표주박 하나 벽 위에 걸려 있어라”(함월선사)

‘맑음’으로 고요하게 앉아서 하루하루 걱정이 없는 시간을 만드는 연습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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