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과 정치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세상에서 거짓말을 가장 ‘쎄게’ 한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석가모니불일 것이다. “나는 49년 동안 한마디도 설법한 적이 없다”고 한다. 깨달음의 지혜를 나누기 위해 평생 길 위에서 살다가 돌아가신 분이 마지막에 내놓은 말은 자신의 말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숭배하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는다. 그 뜻은 간단하다. 말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밥이라는 말은 말일 뿐이다. 구해서 먹어야 진짜 밥이다. 스스로 내면의 불성을 찾아 부처가 되라는 가르침이다.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남송의 대혜종고 선사 또한 그 뜻을 충실히 받들었다. 깨달음의 법칙을 잘 풀어놓은 <벽암록>의 목판을 불태워버렸다. 말에만 의지하는 수행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다. 이 책에는 깨달음으로 이끄는 백 개의 공안(公案)에 각종 해설이 붙어 있다. 선사들은 뼈저린 수행으로 부처인 본래 성품을 되찾았다. 도둑질하듯 자기 것처럼 삼아 흉내 내는 거짓 풍토를 일거에 타파했다.

세상엔 거짓말이 난무한다. 수도 없이 접하는 상업광고는 거짓말로 도배되어 있다. 음료수 하나로도 모든 즐거움을 줄 것처럼, 혹은 옷 한 벌로 행복을 구가할 수 있을 것처럼 미사여구를 동원한다. TV를 잘 보라. 열에 아홉은 젊은 여성을 등장시켜 아름다움이 영원할 것처럼 포장한다. 삶은 매 순간 자기만의 절대성과 자존의 가치가 흘러넘침에도 스크린의 최면에 넘어가 광고의 노예가 된다. 소비자본주의의 속임수는 독존의 삶을 획일적 생산품의 최종 처분장으로 만든다.

가짜뉴스는 SNS나 미디어로 재생산되어 정보전달을 왜곡하고 진실을 찾는 세상을 어지럽힌다. 정치인들 또한 거짓말을 한다. 대중을 혼란스럽게 하는 거짓말은 정치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다. 선거법에서 후보자의 허위사실을 제재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낯 두꺼운 정치인들의 말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진영이 갈라져 있어 특정 세력의 말만 믿는 확증편향을 강화하기도 한다. 그리고 예능 현상에서 보듯 카리스마가 형성된 정치인의 거짓말은 그 권위를 더욱 증폭시킨다.

거짓말탐지기는 손바닥의 땀, 호흡, 혈압, 뇌의 전자파를 이용하는데 이것도 훈련만 받으면 무사히 통과할 수 있다. 정치인들은 거짓말의 연쇄로 무사통과한다. 진짜 거짓말탐지기는 국민임에도 속임수 때문에 정치에 무관심해진다. 막상 투표장에 가서는 친·인척을 비롯한 각종 연줄을 따져 맹목적 투표를 한다. 지역성이 그렇듯 사회가 병들어간다.

이 나라 최고 지도자들은 거짓말을 대물림한다. “나는 최순실을 모릅니다”라는 말로 국가의 사유화를 은폐하고자 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발가벗은 임금님이 되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이 운하 건설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것을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현 대통령의 거짓말은 우리가 과연 왜 촛불을 들었는가에 대한 회의를 하기에 충분하다.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인 2015년 당시 정권의 특별사면에 대해 “재벌 대기업 총수에 대한 특혜사면을 자제하고 서민과 약자를 위한 국민대상형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자신의 말을 뒤집었다. 광장의 촛불민심은 그의 말을 믿었지만 배반당했다.

또한 대통령이 되기 직전인 2017년 초에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해 “(미국과의) 합의 자체가 대단히 성급하고 졸속으로 이뤄진 것으로, 합의 전에 사회적인 공론화가 이뤄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과정과 절차의 공정함을 따지며 국회의 비준동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대통령이 되어서는 잔여 사드를 힘으로 밀어 넣고, 환경영향평가도 졸속으로 진행했다. 이 땅에서 대통령보다도 더 큰 힘이 미국이라면 우리는 군사식민지의 국민이라는 말인가. 미국도 경고한 전자파의 피해로 주민들이 암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 사드 전자파가 무해하다던 위정자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거짓말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 행동임에도 상대를 위하는 척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정치인들의 거짓말은 이러한 속성을 강화하면서 대중들의 도덕적 주체성을 무너뜨린다. 사회적 통합능력을 또한 무력화한다. 높은 도덕성으로 무장한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악령>에서 “인생에서 무엇보다도 어려운 일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사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거짓말을 믿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정치인은 늘 자신의 가슴속 양심을 회광반조(回光返照)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누가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인가로 판가름 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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