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강령 꺼내 들어야

김태일 장안대 총장

이준석의 정치적 수사(修辭)는 훌륭했다. 그는 잡탕 정당(catch-all-party)이라는 어수선한 현실을 단숨에 비빔밥 정당(salad bawl)이라는 우아한 그림으로 만들어놓았다. 그리고 거기에 각기 다른 색깔과 맛을 가진 고명의 의미를 덧붙였다. 다양성, 관용, 공존 등의 원칙으로 정당을 이끌어가겠다는 설명이었다. 그의 비빔밥론은 제법 그럴듯한 명분으로 보였으며 대선 후보경선 과정을 관리할 현실적 힘이 될 것 같았다.

김태일 장안대 총장

김태일 장안대 총장

그런데 지금 괜찮았던 담론은 잦아들고 있다. 비빔밥의 밥알은 곤두서고, 콩나물·고사리·당근은 그릇 밖으로 튀어나올 듯 춤을 추고 있다. 이준석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 세대교체의 문을 연 젊은 지도자, 새로운 보수의 총아와 같은 상찬은 어느새 기억 속에서 아련하다. 어떤 이는 그를 가리켜 ‘멀쩡한’ 보수가 처음 등장한 것이라고 했는데 그는 지금 멀쩡하지 않다.

이준석은 ‘경선 버스 출발시키려 했더니 누가 운전대를 뽑고 의자를 부수었다’고 했다. 자신의 리더십이 훼손되고 있다는 말이다. 그의 비유를 흉내 내어 말하자면, 비빔밥에는 여러 가지 고명들을 잘 어우러지게 하여 맛을 최종적으로 만들어내는 고추장 역할이 필요한데, 자신이 그런 고추장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비빔밥의 성공을 좌우하는 고추장의 존재에 애당초 그의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따로 또 같이, 그리고 그 이상의 새로움을 만들어내게 하는 비빔밥의 고추장 노릇을 잘해야 그의 리더십이 제대로 설 텐데, 보수정치, 혹은 한국 정치 전체의 변화를 위해 그의 성공을 기원했던 사람들 사이에서 조바심이 커지고 있다.

이준석이 경선 버스에 페인트 낙서를 일삼는 여의도 왈패들을 진정시키며 고추장 리더십을 만들려면 버스 출발 장소와 시간을 가지고 티격태격 다툴 것이 아니라 버스가 어디로 가려는지를 가지고 다스려야 한다. 버스가 가는 방향과 목적지는 ‘국민의힘 강령’이 가리키고 있다. 강령은 정당이 지향하는 가장 높은 수준의 목표 가치이며 포괄적인 행동 규범이다. 당의 구성원들은 이 강령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대선 후보도 예외가 아니다. 곤두선 밥알과 춤추는 고명들을 아우르며 비빔밥의 맛을 내게 하는 것은 강령이다. 강령이 고추장인 셈이다.

국민의힘 강령의 제목은 ‘모두의 내일을 위한 약속’이다. 총선 패배, 대통령 탄핵, 대선 패배, 지방선거 패배 등 패배의 행진 벼랑 끝에서 만든 새로운 깃발이다. 새누리당, 자유한국당으로 이어지는 좌절 과정에서 절치부심하면서 만든 보수정치 부활의 이정표이다. 국민의힘이 이것을 잘 따라가기만 하여도 보수정당은 물론 우리나라 정당정치 전체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다.

이준석은 이 강령을 꺼내 들어야 한다. 그리고 대선 후보들, 특히 새내기 당원 윤석열과 최재형에게 밑줄 그어가며 공부를 시키기 바란다. 국민의힘 강령 전문에서 ‘현대사의 민주화운동 정신을 이어 간다’라는 문단을 윤석열이 잘 읽었더라면 부마항쟁과 6·10항쟁 사진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비판받을 발언은 하지 않았을 것이고 ‘일하는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을 국민의힘도 꿈꾼다는 사실을 강령에서 확인했더라면 ‘주 120시간’ 같은 시대착오적 노동관을 가지고 있다는 욕을 먹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 책임과 의무’에 대해 분명히 밝히고 있는 국민의힘 강령 몇 줄만 읽었다면 ‘국민의 삶을 왜 정부가 책임지냐’는 최재형의 듣기 민망한 말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준석은 강령을 손에 들고 대표로서 영을 세워야 한다. 윤석열과 최재형에게 국민의힘 강령 읽기 특별과외가 필요한 까닭은, 두 분의 발언이 아슬아슬 극우정당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는 것 같아서 그렇다. 자기가 속한 정당의 강령은 훑어보기나 했나 싶다. 당대표는 특별 학습을 통해 두 분이 ‘개인의 이익을 넘어선 공공의 선이 존재하고, 자유는 공동체를 깨뜨리지 않는 범위에서 허용된다. 국가와 사회가 스스로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라는 국민의힘 강령에 실려 있는 ‘믿음’을 내면화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이준석은 국민의힘 대표로서 리더십을 세우고 당내 통합을 이루며 보수정치 발전의 단서를 만들기 바란다. 이것이 비빔밥을 완성시킬 고추장 리더십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 데는 우리나라 정당들이 일반적으로 ‘강령’의 의미를 간과하고 있다는 점을 깨우치려는 의도도 있다. 당대표가 간판이라면 강령은 당의 깃발이다. 둘 다 최고의결기구인 전당대회가 정하는 것이며 둘의 중요성은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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