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 목사·시인
[임의진의 시골편지] 쓸쓸한 여관방

옛노래 ‘오빠는 풍각쟁이’를 불렀던 가수 박향림. 1940년대 ‘쓸쓸한 여관방’ ‘흐르는 남끝동’을 비롯한 히트곡을 남겼다. ‘레코오드’ 바닥에서 유명해지던 25세에 갑자기 요절. 배우 심영이 대사를 읊은 뒤 노래는 시작된다. “가슴을 파고드는 싸늘한 바람에 여관방 등잔불이 음~ 가물거린다. 창틈을 새어드는 음~ 휘파람 소리에 아아~ 타향의 그 누구가 타향의 그 누구가 나를 울리나.” 명절마다 여행을 떠났었다. 어른이 돌아가시고 안 계신 마당. 찾는 이들에게 마땅히 대접할 명절 음식도 없고, 무엇보다 통속으로 오가는 말들이 귀찮았다.

타향의 여관방에 들고는 했다. 심민아 시인의 시집 첫 페이지 같은 풍경. “커튼을 열면 눈이 내리고 온통 빛이 지나간 자국들. 어떻게 사나요? 도깨비처럼 살지요. 도깨비처럼 사는 게 무엇인가요? 이렇게 가끔 나타나는 거지요.” 도깨비 집시들이 사는 동네. 거기에다 가슴을 파고드는 ‘싸늘한 바람’은 우후우후 귀신 소리를 냈다.

첼리스트 카잘스는 제자 마르티타와 결혼하고 푸에르토리코 섬나라로 이주했다. 친구가 방문해 향수병 운운하자 카잘스 왈, “자네 마음을 조금은 짐작하겠네. 사실 나는 고향집을 떠나온 지가 고작해야 30년뿐이라네.” 카잘스의 첼로 소리는 ‘창틈을 새어드는 휘파람 소리’를 빼닮았다.

세상엔 승자보다 패자가 훨씬 많고, 1등은 한 명뿐이며 모두가 그 밑을 지탱해. 상을 받으러 단상에 올라가는 한 명을 빼곤 모두 운동장에 남아 박수를 치지. 여기 외롭게 여행하는 이들이 작별곡을 연주할 때 낙엽은 편안히 눈을 감는다. 대지의 박수 소리 천둥이 울리고, 가을비가 내리면 모두가 승자가 되는 추수철. 난민, 이주민, 실향민, 가족을 잃은 이들의 여관방에 등잔불이 가물거릴 때 개밥바라기별도 노랗게 흔들린다. 어쩌면 가장 홀가분하고 아름다운 엔딩 신, 타향살이와 휘파람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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