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로도 꽃피운 ‘고등어 사랑’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동남해역의 한 어시장을 걷다 남들도 모르게 읊조리고 말았다. 어른 팔뚝만 한 당당한 몸통에 유선을 그리며 매끈하게 빠진 몸, 그리고 형형한 눈빛과 어울린 등허리의 빛나는 푸르름이라니. 시르죽어 널브러진 뼘가웃짜리 내륙 어물전의 고등어에 댈 게 아니다. 이즈음 통영과 포항 사이 바다에서 나는 고등어란 ‘헌걸차다’는 한국어, ‘아름답다’는 한국어를 어디에 써야 할지를 일깨우는 존재다. 1983년 나온 김창완의 ‘어머니와 고등어’는 여전히 힘이 세다. “한 귀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 하는 노랫말이 다시 귓속에 쟁쟁하다. 당대 대중의 노래 속에서도 헤엄쳐온 이 물고기는 <조선왕조실록>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이미 중요한 수산자원으로 등장한다.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그 이름도 갖가지다. 고도어[古刀魚, 古道魚], 고등어[皐登魚, 古等魚], 고동어(古同魚) 등 다양한 표기의 이름을 만나면 ‘고등어는 언제든 고등어였구나’ 하면서 싱긋 웃음이 난다. 그 푸른 무늬에 방점을 찍은 한자 이름은 벽문어(碧紋魚)이다. 또 다른 한자 이름으로 고돌이어(古突伊魚)가 있다. 오늘날의 한국어 사전은 ‘고도리’를 ‘고등어의 새끼’로 풀이하지만, 그전에는 ‘고도리’가 고등어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1900년대 일본인들이 만든 <한국수산지>를 펼쳐보자. 이 책의 고등어 항목에는, 고등어를 뜻하는 일본어 ‘사바(鯖, さば)’ 아래로, 조선어 이름 ‘고동어(ゴドンオ), 古道魚, 고도리(ゴドリ)’가 대등하게 이어진다. 갖가지 표기의 갖가지 이름이 여기저기 보인다는 것은 이 생선이 오랫동안, 온 지역에서, 널리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는 뜻이다. 다시 위 책을 보면 그때에도 “고등어는 조선인이 좋아하는 것으로 판로가 매우 넓”었다. 조선인은 “대개 배를 갈라 다량의 소금을 뿌려 판매”했다. 그 가운데 전라도산은 강경, 광주, 목포로 넘어갔다. 영일만 입구 및 죽변에서 잡은 것은 경주·영천 등지의 시장으로 운송했다. 일본인이 어획한 것은 부산에 집결했다가 가마니에 담겨 대구·마산·통영·진주 등으로 갔다. 온 한국인이 전국에서 고등어를 먹는 모습 또한 한 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한편 예전에는 구이·조림·찜·찌개 외의 방법으로도 고등어를 먹었다. 서울 사람 허균(1569~1618)은 “고도어(古刀魚). 동해에서 나며 내장젓이 가장 맛있다”라는 기록도 남겼다. 해방 직후만 해도 고등어알은 찌개거리였다. 오늘날 고등어내장젓·고등어젓·고등어젓국이 영 없지는 않지만 흔한 일상은 아니다. 이러나저러나 한국인의 고등어 사랑은 2004년 루시드 폴의 노래 ‘고등어’, 2010년 노라조의 노래 ‘고등어’로도 꽃피었다. 세대를 가로질러 노래로 몇 번이나 다시 꽃핀 먹을거리라고 하면 단연 고등어 아닌가. 루시드 폴의 ‘고등어’ 또한 김창완의 노래만큼이나 쟁쟁한 노래이다. 그 끄트머리를 고등어 살점 씹듯 꼭꼭 씹어본다. “나를 고를 때면 내 눈을 바라봐줘요/ 나는 눈을 감는 법도 몰라요/ 가난한 그대 날 골라줘서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오늘 이 하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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