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1호 사건과 법치의 역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민주공화국은 법치국가를 지향한다. 지난 연말 소위 ‘공수처 1호 사건’으로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검찰에 의해 기소되어 법치의 본질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 조 교육감은 해직교사를 부정 채용하기 위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와 임용 관련 국가공무원법위반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두 죄목의 핵심 구성요건은 “직권을 남용”하는 것과 “시험 또는 임용에 관하여 고의로 방해하거나 부당한 영향을 주는 행위”이다. 언뜻 보기에 엄단할 필요가 있는 반사회적 행위다. 그러나 ‘남용’이란 상대적 개념이기 때문에 자칫 오용하면 정상적인 권한행사마저도 처벌할 수 있는 치명적인 위험을 가지고 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으로 법집행기관의 자의가 개입하기 쉬운 모호한 기준이다. 시험 등에 대하여 ‘부당한 영향’을 주는 행위란 것도 원론적으로야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지만 현실에 적용하다 보면 시험 관련 직무행위를 과도하게 처벌의 대상으로 삼게 되는 위험이 있다.

관건은 형사절차에 따라 교육행정을 비롯한 모든 권력행위가 유죄 혹은 무죄의 차원에서 재단되는 것이 민주공화국의 이상인가에 있다. 적폐청산의 시대적 요구에 취해, 혹은 ‘내로남불’이라는 정략적 말장난에 현혹되어 민주공화국의 근간인 법치를, 처벌을 만병통치약으로 받드는 ‘법률가에 의한 통치’로 오해하는 것은 아닌가? 촛불혁명에 의해 직권남용으로 국정을 농단한 권력자를 탄핵한 후 농단에 조력한 검찰의 개혁을 위해 탄생한 공수처의 1호 사건이 검찰로 하여금 직권남용을 이유로 적폐의 희생자인 해직교사 특별채용 사안을 기소하도록 요구하는 아이러니가 어처구니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법치의 핵심이 바로 ‘법 앞의 평등’이다. 교육감도 법이 정한 절차와 요건에 따라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그러나 조 교육감 사건처럼 법적 절차와 요건을 해석·집행하는 데 논란의 여지가 많다면 그런 행위를 처벌까지 하는 게 법치가 추구하는 정의에 부합하는 것일지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 공무수행에 대하여 처벌만능주의로 대응하는 것은 해당 직무권한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복지부동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행정 면책의 법리가 입법화되고 설령 권한행사가 부당·위법한 경우에도 그 결과를 시정하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형사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나 임용관련법위반죄가 매우 엄격한 요건에 따라 객관적으로 명백하게 악의적이고 현저하게 권리행사에 부당한 결과를 초래한 경우에만 적용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엄격한 적용이 필요한 죄목으로 조 교육감을 기소한 데 대한 사법적 결정은 그 동기에 대한 법적 판단이 중요하다. 목적이 옳다면 절차위반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일차원적 주장이 아니다. 처벌의 구성요건인 남용이나 부당영향의 판단에 동기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의미이다. 이번 사건에서 발단이 된 특별채용은 “교육양극화 해소와 특권교육 폐지 및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 확대에 기여한 자”를 우대하는 것이다. 취업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해직교사를 우대하는 채용이 바람직한가에 대해 정치적·도덕적 판단은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동기가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반사회적인 위법행위의 전제가 될 수 있을 것인가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법치의 핵심인 ‘법 앞의 평등’이 무조건적인 차별의 금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평등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하는 것, 즉 합리적 이유를 가지는 차별이 오히려 정의에 부합하는 것으로 본다. 교육민주화에 앞장섰다가 해직된 교사의 특별채용은 헌법적 합리성이 충분하다. 헌법 제31조 제4항에서 국민의 균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 실현의 전제조건으로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할 의무를 국가에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사교육의 범람으로 경제적 능력에 따른 교육양극화가 심화되는 환경에서 특권교육의 폐지와 교육민주화에 기여하는 활동으로 탄압받은 해직교원을 일반채용이 아니라 특별채용에서 우대하는 것은 헌법의 취지에 부합한다. 교육관계법령이나 공무원법령은 교사의 시민적·정치적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한 교사들의 실천은 교직의 박탈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이와 같이 교육의 자주성·정치적 중립성을 실현하기 위한 해직교사의 구제를 위한 특별채용정책을 단죄하는 명분으로 법치가 제시된다면 이 또한 역설적이지 아니한가? 이제 법원이 헌법적 정의에 부합하는 법치수호자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줄 수 있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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