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순하다’는 것

김찬호 성공회대 초빙교수

올해 만 예순 살이 된다.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환갑잔치를 열었지만, 수명이 길어지고 사람들이 점점 젊어지면서 이제는 거의 사라진 풍습이 되었다. 그렇긴 해도 앞자리가 6으로 바뀌는 소감은 각별하다. 아무리 장수한다 해도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는 짧다는 사실, 그리고 5년 후에 법적으로 노인이 되는 현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생애의 중요한 전환점을 통과하면서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향해 가는가. 노년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김찬호 성공회대 초빙교수

김찬호 성공회대 초빙교수

<논어>에서 공자는 나이에 따른 인생의 과업을 설파하면서 60세를 ‘이순(耳順)’의 시기라고 했다. 왜 귀에 주목했을까. 귀는 대다수 동물에게 육체적 생존은 물론 사회생활에서도 핵심적인 감각기관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여서 면적당 신경 다발의 수가 귀에 가장 많은데, 언어가 고도로 진화하면서 청각의 기능은 더욱 긴요해졌다. 인간의 말은 매우 복잡한 신호 체계다. 억양, 어조(톤), 강세, 빠르기, 한숨 등의 미묘한 뉘앙스를 감지하면서 상대방의 목소리에 깃들어 있는 감정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 청각이 손상되면 공감 능력을 키우기가 어렵다고 한다.

청각에 아무 문제가 없는데 제대로 듣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나이가 들수록, 또는 지위가 높아질수록 더 그런 듯하다. 말소리는 잘 들리는데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 문장은 정확하게 이해하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마음을 놓친다. 그리고 에고를 띄워주는 감언(甘言)에는 귀가 얇아지고, 이견이나 쓴소리에는 귀가 점점 어두워진다. 상대방을 헤아리는 촉수가 무디어지고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절대화하면서 인간관계는 점점 메말라간다. 특히 후배 세대와의 접점이 줄어들면서 노후의 고립과 외로움이 깊어진다.

이런 맥락에서 이순(耳順)의 뜻을 되새기게 된다. ‘귀가 순하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다른 사람의 말이 귀에 거슬리지 않고 깊이 이해되는 경지라고 일반적으로 풀이된다. 도올 선생에 따르면 ‘아무리 자신을 욕하는 소리를 들어도 화가 나지 않고, 세파의 거슬리는 일들이 귓전을 때려도 감정의 동요가 없는’ 상태라고 한다. 배병삼 교수는 ‘상대적 진리, 부분적 가치들을 두루 긍정하는 그윽한 지경’이라고 설명한다.

나의 귀는 부드러운가. 마음이 경직되어 ‘가청 주파수’의 범위가 좁아지지 않는지 검진해 보아야겠다. 과잉 정보와 허언들로 인한 ‘난청’, 내적인 횡설수설의 ‘이명’에 시달리지 않으면 좋겠다. 그래서 완고함으로 퇴행하지 않고 견고함으로 진일보하고 싶다. 그러려면 유유상종에 안주하지 않고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역설을 누릴 줄 알아야 한다. 휩쓸리고 치우치지 않으려면 차이가 빚어내는 긴장과 불편함을 견디어야 한다. 귀에 신체의 평형을 담당하는 전정기관이 있다는 것이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총명(聰明)하다’에서 ‘聰’은 ‘귀가 밝다’는 뜻으로, 글자 안에 ‘耳’자가 들어가 있다. 명민해지기 위해서는 귀가 열려야 한다. 의학적으로도 귀가 건강하면 혈류가 원활해 생각이 맑아지고 심신이 젊어진다고 한다. 드넓은 세계로 귀가 트이면 우리는 한결 유복하게 나이들어갈 수 있으리라. ‘지혜는 듣는 데서 오고, 후회는 말하는 데서 온다.’(영국 격언)


Today`s HOT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