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는나이를 내버려두라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맬컴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에 나오는 이야기다. 캐나다 프로 하키 선수는 1~3월생이 많다. 어째서일까. 어릴 적에는 개월 수에 따라 성장차가 크다. 같은 해 태어난 아이들끼리 경쟁하면 1~3월생이 유리하다. 그 차이가 유소년 리그와 청소년 리그를 거쳐 성인 리그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이제야 알겠다. 내가 초등학교 6년 내내 학급에서 키가 가장 작았던 이유를. 내 생일은 2월 하순, 속칭 ‘빠른 연생’이다. 꼭 그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동급생보다 신체적 성장이 늦은 편이었다. 모르긴 하지만 지적 성장도 차이가 났을 것이다. 당시 1, 2월생 자녀의 부모들은 입학 시기를 일부러 늦추는 것도 고민해야 했다. ‘빠른 연생’이 유리한 점도 있지만 불리한 점이 많았던 모양이다.

‘빠른 연생’은 왜 생겼을까. 신학기의 시작이 3월이므로 그에 맞추어 취학연령 기준일을 3월1일로 정해서다. 1, 2월은 이미 지났으니 입학일을 기준으로 3~12월생과 이듬해 1~2월생은 만 나이가 같다. 만 나이가 같으므로 함께 입학한다. 한국과 학제가 같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신학기의 시작이 4월이므로 취학연령 기준일도 4월1일이다. 4~12월생과 이듬해 1~3월생이 동급생이 된다. 일본은 나이 셈법을 일찌감치 만 나이로 통일했으므로 지금까지 아무 문제가 없다. 반면 한국은 지금까지도 세는나이가 지배적이다. 1962년부터 2008년까지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지나도록 적응하지 못했다. 결국 교육당국은 2009년부터 취학연령 기준일을 1월1일로 변경했다. 세는나이 기준으로 바꾼 것이다.

해가 바뀌어도 나이는 먹기 싫은지 이맘때면 으레 한국식 세는나이를 버리고 만 나이로 통일하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미 법적 연령은 만 나이다. 세는나이는 일상에서 관습적으로 사용할 뿐이다. 사적 영역까지 법으로 강제해야 직성이 풀리나 보다. 취학연령 기준일이 세는나이 기준으로 바뀐 지 겨우 13년이다. 그 13년 사이 한국인의 연령 관념에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이라도 일어났단 말인가. 나이 셈법을 만 나이로 통일하면 입학연령 기준일도 신학기 시작일로 회귀해야 한다. 1월1일을 기준으로 삼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결국 만 나이 통일은 ‘빠른 연생’의 부활로 이어진다. 학생과 학부모가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까. 아직은 아니라고 본다. 세는나이 관념은 여전히 공고하다.

만 나이로 통일하자는 주장의 속내는 두 가지다. 첫째는 한 살이라도 어려지고 싶다는 욕망이다. 만약 만 나이가 세는나이보다 한 살 더 많다면 과연 이렇게 끈질기게 주장할까 싶다. 아니라면 서열을 확실히 정하려는 의도다. 세는 방식에 따라 나이가 달라지면 한두 살 차이까지 따져 위아래를 정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우니까. 나이 따위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람이라면 어느 쪽이건 상관없을 것이다.

어떤 이는 나이가 둘이라서 불편하단다. 나이만 둘인가? 한국인 대부분은 이름이 둘이다. 한글 이름과 한자 이름이다. 여권의 영문 이름까지 합치면 셋이다. 이름이 여럿이라 불편한가? 한국인은 달력도 둘이다. 양력과 음력이다. 음력 설과 추석은 여전히 민족의 명절이다. 음력 생일을 고집하는 사람도 많다. 불편하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양력과 음력은 큰 문제없이 공존하고 있다.

어떤 나라는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고, 어떤 나라는 건물 층수를 0층부터 센다. 어떤 나라는 4층이 없고 어떤 나라는 13층이 없다. 어떤 나라는 수저로 밥을 먹고, 어떤 나라는 나이프와 포크를 쓴다. 외국 가면 그 나라 표준시에 시계를 맞추듯 그 나라의 관습과 문화를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 한국인은 태어날 때부터 한 살이고, 1월1일을 기준으로 나이를 먹는다. 이것이 한국의 관습이고 문화다. 편의상 법적 연령은 만 나이로 통일했지만 그것이 일상적 관습과 문화를 버려야 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버려야 할 것은 획일적인 기준을 벗어나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편협한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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