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 TV평론가
[김선영의 드라마토피아] 학원괴담 2022

최근 학원물의 새 경향은 호러 장르적 요소와의 적극적 결합이다. 이 같은 경향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는 넷플릭스 <인간수업>(2020)은 범죄스릴러, 그 뒤를 이어 역시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보건교사 안은영>은 오컬트 호러의 성격을 띤 작품이었다. 같은 해 TV조선에서 동시 방영된 seezn(시즌)의 오리지널 3부작 드라마 <학원기담>은 아예 정통 호러물이다. 지난해 전통적인 학원물의 계보를 잇는 <학교2021>(KBS)이 방영되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새로운 경향에 대적할 만한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김선영 TV평론가

김선영 TV평론가

급기야 올해 초에는 좀비 아포칼립스 학원물까지 등장하고야 만다. 지난 1월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사진)은 학원물의 새로운 경향의 최전선에 놓인 작품이다. 드라마는 경기도 외곽지역의 한 고등학교에서 좀비 바이러스가 급격히 퍼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과학실을 청소하던 학생 한 명이 실험용 쥐에게 물린다. 수상한 과학교사는 다친 학생을 감금하고 그에게 일어나는 신체 반응을 유심히 살핀다. 서서히 ‘괴물화’되어 가던 학생은 몸부림치다가 결국 과학실을 탈출하고, 그 이후의 이야기는 익숙한 좀비물의 공식을 충실히 따라간다.

전형적인 장르물의 전개 안에서도, <지금 우리 학교는>의 뿌리가 학원물임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은 공포의 근원적 토대 때문이다. 극중에서 재난이 급속도로 확산되는 결정적 배경에는 학교의 특수한 현실이 작용하고 있다. 입시에 최우선의 목표가 맞춰진 학교는 학생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무한경쟁, 집단 따돌림, 폭행, 차별, 혐오 등의 문제는 사소한 것으로 무시한다. 이 억압된 문제들 사이에서 최악의 감염병이 폭발했다. 좀비 바이러스의 기원은 학교폭력과 어른들의 은폐에 있었고, 재난은 통제에 급급해 학생들을 고립시킨 학교로 인해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었다.

이렇듯 모든 비극이 학생들의 소외된 현실에서 비롯된 참사임을 직접적으로 말해주는 장면은 5회에 등장한다. 교실에 숨어 구조를 기다리다 점점 지쳐가는 주인공 온조(박지후)와 남라(조이현)가 나누던 대화 신이다. “어떤 나라는 아이들보다 어른이 죽는 걸 더 슬퍼한대. 어디는 아이들이 죽는 걸 더 슬퍼하고. 우리나라는 어떤 거 같아?” 슬프게도 그들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구하러 온다 해도 우리가 첫 번째는 아닐 거야. 우리가 그렇게 중요한 사람들은 아니잖아. 학생이잖아.”

요컨대 <지금 우리 학교는>을 비롯한 최근 학원물의 호러화 경향은 10대들의 절망적 현실의 장르적 구현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학교는 최근 작품으로 올수록 한층 지옥에 가까워진다. 가령 <인간수업>에서는 학생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상담실이 어둠의 돈을 은닉한 범죄 장소였고, <보건교사 안은영>의 학교는 무덤 위에 세워진 곳이었다. 그렇게 범죄자들이 은신하고 유령이 배회하는 공간이었던 학교가, <지금 우리 학교는>에 이르면 아예 ‘살아있는 시체들’로 가득한 지옥 자체가 된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경향을 점차 가혹해지는 현실의 재현으로만 받아들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이는 예시 작품들이 모두 OTT 시리즈인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다시 말해 상대적으로 검열에서 자유로운 환경을 이용해 표현의 수위를 높여 경쟁력을 확보하려 한 결과이기도 하다. 청소년들의 현실을 대변하고자 했다면, 정작 그들이 작품을 보지 못하는 상황을 변명하기 어렵다. <인간수업>은 청소년 성범죄라는 소재의 민감성을, <지금 우리 학교는>은 고어한 좀비 장르의 특성을 ‘19금’의 필연적 방패로 내세웠다. 하지만 지옥 같은 현실을 반영한다는 미명 아래, 잔혹하게 버려지고 살해당하고 추락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스펙터클로 소비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의혹을 완전히 해소해주지는 못한다.

같은 맥락에서 청소년 범죄를 다룬 또 하나의 청소년 시청 불가 시리즈 <소년심판>(넷플릭스), ‘10대들의 누아르’를 표방한 <소년비행>(seezn) 등 잔혹화 경향을 이어가는 작품들의 잇단 출현을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 10대들의 고민이 어른들만을 위한 장르물의 쾌감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더 예민하게 주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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