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에는 꿈이 있어야 한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

과잉확신편향(hindsight bias)이라는 개념이 있다. 행동 경제학 등 다양한 학문분야에 걸쳐 있는 이 개념은 정의와 쓰임새도 다양한데 단순화시키면 사람들은 이미 일어난 사건을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다 예측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 지나고 나서 말이다. 근데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내 말 안 듣더니 그럴 줄 알았어”. 이러고 나오기 시작하면 상대방은 억장이 무너진다. 우기지 말라고 해도 그는 말도 듣지 않는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

이창민 한양대 교수

왜 그럴까? 일부러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기억이 왜곡되거나, 유리한 것만 기억하고 불리한 것은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편향은 자존심이 강하고, 토론에서 이기고 싶고, 비난받고 싶지 않아 하는 집단에서 더 강하다. 대표적인 것이 정치권이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그러지 말자.

생각해보면 민주당에 쉬운 대선은 없었다.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은 IMF 외환위기까지 불러온 여당 이회창 후보를 심지어 DJP 연합까지 해가면서도 39만여표 차이로 간신히 눌렀다.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와 대선 하루 전 파기라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57만여표 차로 승리하였고, 2012년 문재인 대통령은 정권교체 여론이 50%가 넘어가는 상황에서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당 후보인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100만여표 차이로 패배하였다. 새삼 이번 대선기간 여론조사를 보며 느낀 것이 있다. 국민의 정치이념 지형이 만만치 않다는 거다. 들쑥날쑥하는 여론조사에서도 비교적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진보성향 유권자가 25%, 보수가 30%, 나머지 45%가 중도 또는 모름·무응답이다. 집권을 목표로 하는 민주당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중도 진보의 혁신과제와 씨름해야 한다. 나는 잘했고 나 말고 다 못한 거 같은 편향적 평가에서 빨리 빠져나오자. 그냥 민주당은 내부 기대보다 조금 잘했을 뿐이다.

민주당 586 중진 의원 중 한 명이 지난 1월 말쯤 이런 말을 했다. 586 정치가 민주화 운동의 열망을 안고 정치에 뛰어든 지 30년이다. 국회의원도 하고, 장관도 하고, 청와대 일도 했다. 그러나 30년 동안 소득불평등은 더 악화됐고 출생률은 세계 최저이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제대로 못한 것이다. 그래, 이런 거부터 시작하면 된다. 포용적 정치와 포용적 경제는 함께 가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586 정치인들이 평생 자기희생 한번 안 해 보고 학생운동 출신에게 훈계질만 일삼는 보수 엘리트에게 떠밀리듯 물러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스스로는 이명박, 박근혜 탓만 하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자기는 양보 하나 못하면서 남들에게만 약자를 포용하라고 하면 선거에서 심판당한다. 정치 인생의 황혼기에 진보의 맏형으로서 본인들의 마지막 꿈을 국민들에게 제시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지금 민주당의 초선, 재선 정치인 중에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별로 없다. 모진 겨울을 견디고 핀 인동초 김대중이나 바보 노무현 정도는 아니라도 차세대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사람이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가가 그의 행동을 결정하고, 이것을 경제학에서는 목적함수라 부른다. 민주당의 초선, 재선 정치인들은 강성팬덤만을 바라보고 있는 거 같다. 물론 강성팬덤들의 당에 대한 공헌이 있다. 그러나 이들만을 바라보는 의제설정은 집권을 목표로 하는 중도진보정당으로서는 치명적이다. 대표적인 것이 과거기억에 대한 왜곡이다. 강성팬덤들은 2020년 총선 180석 압승을 검찰, 언론개혁 완수를 바라는 촛불의지라 해석한다. 개혁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좀 솔직해지자. 당시 초반 선거분위기도 부동산 등으로 좋지 않았으나 코로나19에 잘 대처하기 시작하면서 압승한 거다. 아마 대선패배에 대한 해석을 놓고도 강성들이 또 슬슬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이번 대선의 서울 결과는 민주당 11개구, 국민의힘 14개구 승리, 작년 서울시장 선거는 전 지역구 국민의힘 승리다. 강성들은 이번 서울 결과를 승리라고 주장하고도 남을 사람들이다. 그러나 불과 2년 전 총선에서 민주당 41석, 국민의힘 8석이었다. 과잉확신편향 집단은 망한다. 그럴 시간에 혁신하자. 사회적 약자의 경제적 삶이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방식은 점차 진화하고 있다. 커다랗고 낡은 해머 휘두르면 뭐 하나 걸리겠지 하면서 몸에 내재된 야당 DNA를 발현할 생각만 말고 각자 자기의 무기를 벼르자. 초선, 재선 정치인들은 정치인생의 시작기에 본인들의 새로운 꿈을 국민들에게 제시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민주당에는 꿈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시 기회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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