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하는 몸들을 보라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이 찬란한 봄, 밥알을 씹어 삼킬 때마다 떠오르는 두 얼굴이 있다. 미류와 이종걸이다. 그들이 국회 앞에서 단식 투쟁을 한 지 15일째다. 실제로 만난 적 없어도 그들의 단식이 나와 상관있다는 걸 안다. 당신과도 상관있을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단식이기 때문이다.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차별금지법과 무관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은 소수자 우대법이 아니다. 선택할 수 없는 조건으로 태어나서 살아가다 죽는 생애 주기의 순리대로라면 모두가 한 번 이상 겪게 될 정체성을 차별로부터 보호하는 법이다. 그 법이 아직 없어서 누군가는 곡기를 끊는다. 생사만큼이나 중대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무수한 시민의 절박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법 제정은 거대 양당의 방치 속에 차일피일 미뤄져왔다. 국회가 미루는 걸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어서 움직이는 이들이 있다. 미류와 이종걸의 ‘차별금지법 4월 내 제정 촉구 무기한 단식 농성’도 그런 움직임이다. 두렵지 않아서가 아니라 두려워서 자신의 삶을 건다고, 단식을 시작하며 미류는 말했다.

한편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어넘길 때마다 떠오르는 건 장혜영 의원의 얼굴이다. 장애인 차별철폐의날이었던 지난 20일 그는 청와대 앞에서 머리카락을 밀었다. 발달장애 당사자, 가족, 그리고 시민 555명과 함께하는 삭발이었다. 이들이 한데 모여 머리를 밀면서까지 절박하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장애인 권리 보장 정책에 관한 내용이다. 구체적으로는 발달장애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요구한다. 장애인보장법과 탈시설지원법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상기시킨다. 국회는 아직까지도 미온적으로 심의 중이지만 그야말로 당사자와 주변인의 생사가 달려 있는 법안들이다.

단식과 삭발, 그리고 무릎의 투쟁

장혜영 의원은 말한다. “제 빡빡머리는 하나도 놀랍지 않습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국가의 지원 부족으로 발달장애인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살하는 현실에 이토록 관심 없는 오늘의 국회와 인수위와 윤석열 당선인입니다.” 이제 장혜영 의원은 민 머리로 국회를 활보하며 일한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볼 것이다. 그의 결의에 서둘러 응답해야 할 자들이 국회에 있다.

또 한편 버스와 지하철에서 어떻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전장연 박경석 대표의 얼굴을 말이다. 그는 장애인 활동가들과 함께 지하철 바닥을 기어다녔다. 장애인권리예산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비마이너 기사에 따르면, 시위에 함께한 전장연 박길연은 지하철에 탑승한 시민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30분, 40분 기다리시니 어떠한 불편함이 올라오시나. 장애인은 한평생 이렇게 기다리며 불편하게 살아가고 있다.”

차별금지법에 명시된 차별금지 대상의 목록을 다시 한번 적어보고 싶다. 모든 시민과 상관있는 단어들이다.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 지역, 용모 등 신체 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 고용 형태, 병력 또는 건강 상태, 사회적 신분.’ 한겨레신문 인터뷰를 통해 이종걸은 말했다. “누군가를 법에서 배제하자는 건 어떤 차별을 합법적으로 승인하는 효과를 낳는다.” 평등이 기본값이 아닌 이 세계에서,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운동은 어떤 행위를 차별로 부를지에 대한 공동의 상식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차별받고도 저항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빚을 지고 있다. 홍은전 작가의 주옥같은 문장을 옮겨 적겠다. “사람들은 차별받은 사람과 저항하는 사람을 같은 존재라고 여기거나 차별받았으므로 저항하는 게 당연하다고 쉽게 연결지었다. 하지만 나는 차별받은 존재가 저항하는 존재가 되는 일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으며 오히려 순리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차별받으면 주눅 들고 고통받으면 숨죽여야 한다.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복종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그러라고 하는 게 차별인 것이다. 모두가 침묵하고 굴종할 때 차별은 당연한 자연현상이 된다.”

차별에 대한 저항에 빚 진 우리들

침묵하지 않고 저항하는 몸들이 가까이에 있다. 어떤 차별을 당연하게 만들지 않겠다며 신체를 걸고 싸운다. 모두의 삶이 각자에게 크고 작은 투쟁이겠으나, 온몸을 총동원하며 싸우지 않을 수 없는 이들도 있다.

어떤 기본권은 위장과 머리카락과 무릎 등을 바쳐도 쉬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 몸을 보고도 똑같은 현재가 반복된다면 정치는 뭐하러 있는 것인가. 우리는 뭐하러 사랑과 우정과 존엄을 배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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