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뿐인 지구, 우리 모두의 집

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올봄 새소리 듣는 재미에 들려 요즘은 아침에 깨면 창밖의 새소리부터 들린다. 이른 아침 새소리에 하루를 여는 생기가 넘친다. 새는 잘 모르지만, 박새와 지빠귀 종류의 새소리 같다. 재잘대는 소리를 좇아 뜰의 나무들을 살펴보는데 운이 좋으면 가지에 앉아 있는 새를 보기도 한다. 손바닥만 한 새가 부리를 여닫으며 지저귀는 모습은 앙증맞지만, 소리를 내느라 온몸을 불룩거리는 걸 보면 숙연한 느낌도 든다. 새들도 밤에는 어디선가 잠을 자느라 조용하다가 새벽이 되면 다시 지저귄다. 비가 오면 어디선가 비를 피하느라 조용하다가 비가 그치면 다시 날개를 편다. 관심을 가지고 새를 보니 뜰의 나무가 새가 사는 ‘집’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자연의 집 흔들면 인간 집도 흔들

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올해는 ‘세계 환경의날’ 50주년이고, 이번 주제는 50년 전과 같은 ‘하나뿐인 지구’다. 모든 생명체는 지구라는 하나의 집에 살고 있고 이 집이 망가지면 달리 갈 곳이 없다고 일러주는 듯하다. 사람이 그렇듯, 몸을 가진 모든 생명체는 집이 필요하다. 지구라는 하나뿐인 집에 산과 강과 갯벌 같은 다양한 집이 있다. 모두 인간이 만들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만들 수 없는 것을 우리 마음대로 해도 되는 소유물로 여기면서, 우리가 자연의 주인으로 행세하면서 생겨났다.

얼마 전, ‘새만금신공항’을 건설한다는 전북 군산의 ‘수라갯벌’에 다녀왔다. 수라갯벌에서 불과 1.3㎞ 떨어진 만성 적자의 군산공항이 신공항은 필요도 경제성도 없다는 것을 자신의 존재로 입증하고 있었다. 공항을 짓지 말아야 할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숲보다 뛰어난 탄소흡수원인 갯벌을 파괴하고 탄소를 대량 배출하는 공항 건설은 기후위기 대응에 정면으로 역행한다. 군산공항의 실체인 주한 미 공군의 전력 증강으로 이어질 신공항 건설은 이전부터 군산을 군사적 위협으로 경계해온 중국을 자극하여 군사적 긴장을 고조하고 동북아 평화를 위협할 것이다. 무엇보다 수라갯벌은 멸종위기 1급에 천연기념물인 저어새, 황새, 흰꼬리수리 등과 멸종위기 2급에 천연기념물인 잿빛개구리매, 검은머리물떼새, 수달 등 50종 이상의 법정 보호종을 비롯한 수많은 생명체의 집이다. 우리가 집이 필요하다면 그들도 집이 필요하다. 모두 몸이 있는 생명체다. 자연의 집을 대수롭지 않게 눈앞의 이익과 바꾸면 인간의 집도 온전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뿐인 집에서 다른 뭇 생명체와 함께 살고 있다는 진실을 집단으로 망각하고 전혀 다른 집에서 사는 듯 행동한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근대에 들어서며 인간은 자신을 사유 주체로, 세계를 사유 객체로 분리했다. 기계론적 모형으로 이해한 세계는 다양성과 고유성이 제거된 기하학적 공간으로 변했다. 물질로 환원된 자연은 대상화되어 주인 없는 물건이 되었다. 사람들은 자연에서 무엇을 더 빼낼 수 있을지 몰두하게 되고 거기에 필요한 힘을 얻으려고 자연을 탐구했다. 그렇게 태어난 과학과 기술이 인간에게 자연을 지배할 힘을 쥐여줬다. 아는 것이 힘이다.

지배가 아닌 함께하는 앎 깨닫길

세계를 균질화하는 기하학적 공간은 추상적 관념일 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황량한 곳에도 생명체가 존재한다. 깊이 5400m의 적막한 심해, 그 추위와 어둠 속에서도 생명체가 산다(레이철 카슨, ‘해저’). 세상은 누군가의 집으로 빼곡하고 그 집들이 모여 하나뿐인 지구를 이룬다. 세계는 동질적 공간의 연장이 아니라 고유한 장소의 총합이다. 기하학적 공간 관념은 수많은 삶이 깃든 집을 점유와 지배의 대상으로 만들고 결국 돈벌이의 수단으로 변질시킨다는 의미에서 폭력적이고 반생명적이다.

올해 울진과 밀양의 산불로 막대한 피해가 났지만, 그곳에 살다가 사라진 수많은 생명체와 그들의 집은 거론되지 않는다. 동물이 사라진 세상, 새소리가 들리지 않는 세상은 어떤 곳일까? 사람은 살만 한 곳일까? 오늘의 현실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세계를 보는 우리의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세상에 평화는 없다.

오늘의 위기는 과학기술로 극복할 수 없다. 과학기술의 힘으로 ‘발전’한 결과가 바로 오늘의 위기이기 때문이다. 진보는 더 좋은 삶을 보여주는 희망이 아니라 감내해야 할 운명이 되었다.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과학기술의 지식과는 다른 종류의 앎이다. 잠시 멈춰서 주위를 바라보면 우리가 무심히 살며 놓쳤던 것이 눈에 들어온다. 새가 우리와 같은 ‘생명체’고 갯벌이 수많은 생명체의 ‘집’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가 기하학적 공간이 아니라 누군가의 소중한 집, 함부로 할 수 없는 곳으로 이루어진 하나뿐인 지구, 우리 모두의 집에 있음을 깨닫는다. 이 앎은 지배하는 힘이 아니라 함께 사는 집을 회복하는 힘이다. 세계를 이렇게 알아갈 때 우리는 평화를 희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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