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 우리를 지배한다

<탑건: 매버릭>(이하 <매버릭>)과 <헤어질 결심>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영화보기의 즐거움을 최대치로 선사한다. <매버릭>은 이번주에 누적 관객 수 500만명을 넘는다 하고, <헤어질 결심>은 대규모 흥행과는 거리가 있지만 시네필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는다. 대중문화로 세계를 지배해온 미국과, 요새 콘텐츠로 세계에서 제일 잘나간다는 한국에서 만든 두 영화의 미학은 여러모로 상징적이다. 두 작품은 각각 대중오락과 예술 사이의 넓은 경계면들에 잘 걸친, 또는 그 모순적 상호작용이 최대치에 이르도록 만든 작품이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숭배 애도 적대> 저자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숭배 애도 적대> 저자

영화 장르는 오락과 예술 경계 지대에 위치해 왔고, 대중적인 것과 미적인 것은 길항하는 듯하지만 병립 가능하다. 아니 오히려 양자가 만나는 어떤 균형점·임계점에서 그것은 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다대한 의미를 생산한다. 그리고 점점 더 ‘예술적인 것’의 고급한 성취는 큰 자본의 투여에 의해서 이룩된다. 이는 현대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영토화·식민화하는 힘 때문일 것이다.

음향과 화질이 압도적으로 더 좋은 영화관에 가서 <헤어질 결심>과 <매버릭>에 구현된 영상미학의 최대치를 다시 경험하고 ‘메이킹’도 찾아보고 싶다. 그처럼 영화를 보고 난 뒤 감각은 한껏 자극·고양된다. 그러나 영화들의 화려한 만듦새 외의 ‘내용’과 맥락에 대해서 의구심과 주저도 느낀다. 오늘날의 사회는 이런 ‘예술의 딜레마’에 대해 직시하고 비판적으로 극복하는 일을 무척 어렵게 만들고 있다.

영화 <매버릭>은 21세기에도 결코 죽지 않는 할리우드 미학의 총체 - 전투기라는 기계미학의 집약체, 흔히 ‘지정학적 미학’이라 지칭되는 상태보다 더 노골적인 군사 제국주의와 영웅주의를 남김없이 스펙터클화했다. 미 군당국은 1986년에 <탑건> 전편이 그랬듯, <매버릭>의 성공으로 군에 지원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하며, 실제로 대형 영화관 옆에 입대 상담 부스를 설치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매버릭>의 이 미학+오락의 복합물은 그야말로 ‘고전적’이며 ‘순수하게’ 지배적인 것이다. 따라서 이 같은 <매버릭>의 ‘리얼리즘’을 비판하기는 쉽다. 그러나 마침 <매버릭>의 흥행소식은 림팩(RIMPAC) 훈련에서 한국을 위시한 미국의 동맹들이 온갖 첨단무기를 동원했다는 뉴스나, 국산 초음속 전투기 K-21 개발 소식과 함께 맥락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처럼 <매버릭>의 매력은 힘과 미의 헤어지기 힘든 관계에 근거한다.

영화 <헤어질 결심>의 미적 성취는 미장센이나 오마주로 지칭되는 요소들의 작용 이상인 듯하다. 영화는 때로 관객을 애타게 하고 때론 압도하는 다양한 의장으로 러닝타임을 꽉 채우며, ‘영화적인 것’의 최대치를 보여준다. 바로 그럼으로써 거기엔 모든 뛰어난 예술작품이 그렇듯, ‘문학적인 것’이나 예술적 본질이 긴장된 융합으로 운동한다. 중국어와 한국어 사이를 오가는 말의 미끄러짐이나 이번에도 정서경 작가와의 공동작업으로 이뤄졌을 압축적이고 흥미로운 대사들은 그 부분들이겠다.

이런 요소들이 바다 여신 같은-조선족-팜므파탈-범죄자와 멋쟁이 중년-남자-엘리트-경찰이 사랑에 빠지나 ‘미결’된다는, 익숙하지만 개연성은 약한 스토리와 병진된다. 그래서 이 영화의 아름다움은, 박찬욱의 ‘복수 3부작’처럼 인간의 어두운 욕망과 사회의 모순을 비틀어 꿰뚫거나 <아가씨>처럼 ‘현실’과의 작용으로 맥락을 구성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그리고 그 ‘무관여’야말로 <헤어질 결심>의 요체며, ‘마침내’ 그것은 탐미주의나 모더니즘의 고유한 딜레마와 마주서는 것 아닌가?

이는 분명 대중적인 것과는 길항한다. 그래서 그런 미학의 제작·운반자가 CJ EMN이라는 사실은 다른 면에서 중요하고 아이러니하다. 물론 이 영화만이 아니라 계급적대의 서사인 <기생충>마저도 그런 아이러니의 작동 안에 있었다. 문제는 이것이 문화에 대한 자본의 총체적 지배, 달리 말하면 오늘날 현대적 삶의 양식과 미적인 것에 대한 포섭의 일부일 것이라는 점이다. 자본이 취향과 미를 곱게 조직하고 높이 단련한다. 소위 MZ세대에 엄청 확산돼 있다는 명품의 물질-소비-문화는 물론, 일상의 향기로운 커피도, 가장 귀한 천문학적 가격의 미술품도, 그토록 자랑스러운 한류도, 대자본의 힘을 빼놓고 사고하기 어렵다.

취향과 미적인 것에 대한 지배는 능력주의 같은 지배의 기제와도 쉽게 연동된다. 특히 이 헤게모니의 영역엔 저항이나 노이즈가 거의 희미해지고 있다. 초월적이고 비판적인 ‘다른’ 문화와 아름다움을 다시 만들고 만날 수 있을까. 저 헤어짐을 돌이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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