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아영 문학평론가

목격되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이 있다. 목격될 때마다 폭력을 당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입을 맞추려는 모습을 본 사람은 고개를 돌려 침을 뱉었다. 몰래 따라와 뒤통수를 때렸다. ‘더러운 년들’이라며 지팡이로 다리를 쳤다. 화가 났다. 하지만 그보다 무서웠다. 왜 그렇게까지 악의를 갖는 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좁아지기로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맘 편히 껴안을 수 있는 곳에서 숨어있기로 했다. 비밀 첩보원처럼 들키지 않기로 했다. 폐쇄적이고 안전한 곳에 머물기로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진짜 삶은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면 되니까. 그거면 충분하니까.

인아영 문학평론가

인아영 문학평론가

그런 그에게도 한 가지 소망이 있었다. 바다에서 알몸으로 수영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과 후미진 폐촌의 바닷가로 놀러갔다. 난데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도 없고 바위 절벽과 방풍림으로 꽉 막혀있는 해변이었다. 하지만 파도가 너무 높아 수영하는 데는 실패했다. 아쉬워하는 그에게 사랑하는 사람은 물었다. 왜 그렇게 나체 수영을 하고 싶었어? 그는 물속에서만이라도 자유로워지고 싶었을 것이다. 그 간절한 마음을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상대에게 버림받을까봐 두려웠다는 불안을 들키는 대신 상대의 오해를 내버려두는 편을 선택한다. 김지연의 소설 ‘해변에서 주운 쓸모없는 것들’(<마음에 없는 소리> 문학동네·2022)의 앞부분 줄거리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다룬 가장 담담하고 아름다운 소설 중 하나일 이 소설에서, 세상의 모욕으로부터 사랑을 지키기 위해 목격되지 않으려 했던 연인은 점차 서로에게도 목격되지 못하는 상황으로 휩쓸려간다. 거친 혐오에 그대로 노출되기에는 너무 연약하지만, 그렇다고 두 사람만의 세계에서도 영원히 안온할 수는 없는 두 사람, 결혼 제도의 보호와 혜택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지인들의 승인이라는 안전망조차 없는 이 연인들을 결속시키는 것은 무엇일 수 있을까? 김지연의 다른 소설 ‘긴 끝’에서 코로나 시국에 점점 고립되어가는 문애와 찬희 커플은 서로가 서로를 보아주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지인들의 SNS를 보며 쓸쓸하게 이야기한다. “인간들은 더 자주 서로에게 보여져야 한다고 말이야. 잘 살든 못 살든. 그냥 살아있는 게 목격되어야 해.”(‘긴 끝’·릿터·2022년 6/7월호)

지난 7월16일은 일 년 중 딱 하루, 광장에서 그 ‘목격’이 허락된 날이었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 민선 8기를 맞아 ‘약자와의 동행’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서울시는 퀴어문화축제의 서울광장 사용을 허가하면서 ‘신체 과다노출, 청소년보호법상 유해·음란물 판매 및 전시 등을 하지 않는다’는 차별적인 기준을 내걸었다. 헤테로 남성의 성적 욕망에 복무하는 여성 신체의 노출은 온갖 매스컴에서 경쟁적으로 부추기는 한국 사회에서 비참한 죽음 또는 선정적인 희화가 아니고서는 좀처럼 가시화되지 않는 이들의 존재가 ‘과다노출’된다는 기준은 무엇일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느냐 아니냐”가 혐오감의 잣대라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서울시의 답변으로는 커밍아웃 로맨스 예능의 MC에게조차 “제 주변에는 없어요”라는 말로 패싱되는 이들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목격되어야 할 필요성을 기각하지 못한다.

그러니 광장에서 웃으면서 이야기 나누는 모습, 시청 한복판에 모여서 음악을 듣는 모습,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도로를 함께 걷는 모습을 더 목격하기로 하자. 혐오발언을 소리지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한국 사회더러 바로 그것을 하라고 이날이 있으므로, 살아있는 모습으로 오래 목격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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