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돈 그리고 앎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김월회의 행로난] 힘, 돈 그리고 앎

제자백가의 시대를 두고 ‘백화제방’, 그러니까 온갖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는 비유를 쓰곤 한다. 그만큼 다양한 사상과 많은 학자가 출현하여 한 시대를 풍미하였다.

당시 무척 성행했던 사상 중 하나가 묵가였다. 맹자는 묵가사상으로 인해 공자의 학설이 끊길까 몹시 우려했다. 하여 묵가사상은 사람을 짐승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신랄하게 헐뜯기도 했지만 묵가의 인기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던 묵가사상이 어느 순간부터 역사의 전면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제자백가가 활약했던 시대는 전국시대로, 당시 중국은 여러 나라로 나뉜 채 서로 패권을 쥐기 위해 치열하게 각축하고 있었다. 전쟁이 끊이질 않았고 사회적 약자였던 평민의 고통은 그 끝이 보이질 않았다.

묵가사상은 이러한 상황에서 현실적 대안이 되었다. 그들은 전쟁에 반대했고 상호부조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를 이루어 지속 가능한 생계를 도모하였다. 묵가 공동체에 속하면 조세나 징병 등으로부터 벗어날 수도 있었다. 국가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이를 모를 리 없었던 묵가 공동체는 외부의 힘에 맞서 공동체를 지킬 수 있는 자위력을 도모했고 수비 방면에서는 당대 최고 수준의 전투력을 갖추었다.

여기에 묵가 공동체는 힘과 돈, 앎을 나눈다는 윤리를 실천하였다. 묵자는 “힘 있는 자는 열심히 다른 이를 돕고, 재물 있는 자는 힘써 다른 이와 나누며, 앎을 지닌 사람은 부지런히 다른 이를 가르쳐야 한다”고 함으로써 힘과 돈, 앎은 나눔과 공유의 대상임을, 그러니까 탐닉과 독점의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묵자는 세상이 혼란해지는 원인은 힘이 남아도는데도 남을 돕지 않고, 유익한 앎을 감추어두고는 남에게 가르쳐주지 않으며, 재물이 썩어나는데도 나눌 줄 모르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니 묵가사상은 역사의 전면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힘, 돈, 앎은 예나 지금이나 기득ㄷ권층이 사회적 약자와 나누려 하지 않는 것인데 이를 나누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공동체를 일구어 살며 실천까지 했으니 얼마나 눈에 거슬렸겠는가? 결국 진시황이 강력한 통일제국을 세운 이래 묵가사상은 더는 성행하지 못한다. 힘, 돈, 앎의 평등한 분배를 지향한 사회주의 현대 중국에서조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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