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 30년…보완적인 어제, 불분명한 내일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 소장
[김흥규의 외교만사] 한·중 수교 30년…보완적인 어제, 불분명한 내일

8월24일은 한·중 수교 30주년이다. 지난 10일 개최된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중국 왕이 외교부장은 공자의 ‘삼십이립’(三十而立·서른이 되면 어떤 일에도 움직이지 않는 신념이 서게 된다)이라는 성어를 인용해 한·중관계 30년을 평가했다. 그러나 현재 한·중관계는 극도로 불확실하며 불안정하다. 전환점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래 30년은 냉전시대 30년처럼 다시 적성관계로 전환할지, 우호적인 관계로 재설정할 수 있을지 여전히 불분명하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 소장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 소장

수교 30년의 역사는 거의 양자 관계의 기적이라 부를 수 있다. 1992년 64억달러이던 대중 교역은 2021년 3000억달러가 넘어 47배로 급성장했다. 2021년 중국은 한국의 1위 교역대상국(24%)이다. 한국은 중국의 세 번째 주요 교역대상국이다. 중국은 한·중 수교를 톈안먼(天安門) 사태(1989년)로 인한 국제적 고립과 사회주의권 붕괴의 위기에서 탈피하고, 한국과 경제적 상호 보완관계를 맺으면서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이루는 중요한 기틀로 삼았다.

한국 역시 한반도를 넘어 유라시아 대륙으로 외교의 시야를 확대하고, 북한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여력을 확보했다. 덤으로 중국과의 교역은 한국 경제 발전에 필수가 되었다. 1990년대 말 아시아 금융위기,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때 중국이라는 시장의 존재는 한국의 경제 회복과 추가적인 발전에 핵심적인 외생요인이었다. 한국은 세계에서 중국의 경제성장을 가장 잘 활용한 국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이 없었다면 오늘날 한국의 경제적 발전은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의 무역흑자는 대부분 중국에서 나왔고, 한 해 무역흑자의 80%에 이를 정도였다.

외교·안보·경제 등 전략적 전환점

한·중관계의 비약적 발전을 이끈 가장 핵심적인 외생·구조적 변수는 미·중 전략적 협력관계였다. 이러한 국제환경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중국은 시진핑 시기에 들어 미국을 넘어 독자적으로 자신들의 국제적 위신과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몽’ 전략을 추진했다. 급기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관계가 이제는 “전략적 경쟁 시기”에 돌입했다고 선언했다. 헨리 키신저 박사를 비롯해 많은 국내외 전문가들은 미·중관계가 현재 신냉전의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한다. 더 이상 자유주의적 미국 패권질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은 다극화라는 새로운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이는 미국과의 동맹이 외교·안보와 경제 발전 전략의 축이었던 한국에 엄청난 도전을 안겨주고 있다.

중국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해 한·중 무역관계가 보완적인 관계에서 점차 경쟁적인 관계로 전환되고 있다. 한국의 대중 무역수지는 지난 5월부터 3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석 달 연속 적자는 1992년 8∼10월 이후 30년 만이다.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한·중 양국 간 경제협력 질서, 나아가 한국의 대외무역 질서의 구조적 변화를 예시해주는 것이다. 한·중 경제 협력관계의 새로운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다.

상기 두 가지 구조적 요인의 변화는 한·중관계 30년의 경험에서 다음과 같은 인식을 일깨워 주었다. 첫 번째는 한·중 상호간의 정체성과 가치가 다르다는 점이다. 한국인의 현 정체성은 냉전시기 이후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적 국제질서하에서 거둔 성공에 강한 영향을 받고 있다. 한국은 산업화·민주화·정보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민주·자유·인권 등의 가치를 중시하고, 사유재산을 존중하는 시장체제를 지지한다. 이는 사회주의 체제, 권위주의적 정치체제, 위계적 태도를 지닌 중국에 대해 반감으로 나타나고 있다.

두 번째는 양국 관계에서 기억의 접점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한국에 과거 중국과의 경험은 위협, 굴욕, 거부 등에 기반하고 있다. 중국은 청나라의 영역과 영광을 바탕으로 중화민족을 재구성하려 하고 있다. 서로 다른 시점을 기반으로 구성하는 정체성은 양국 간 갈등과 반목의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근본 잘 지키면서 화친 추구해야

세 번째는 한국의 대중 경제 의존성이 과도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대중 무역 규모는 미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연합(EU)의 절반 정도를 합친 것과 유사하다. 이러한 시장을 대체할 다른 시장은 당분간 찾기 어렵다. 대중 의존도가 80%를 넘는 품목의 수는 1850여개에 이른다. 경제안보의 시기에 중국의 정치적 압박에 너무나 취약한 경제구조를 지니고 있다.

네 번째는 북한 문제에 대해 중국에 기대하는 수준을 대폭 낮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무장을 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견제 역할은 한국의 기대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한·중관계를 급격히 악화시킨 사드 사태는 여전히 한·중관계의 뇌관으로 남아 있다. 한국에 사드가 배치되어 있는 한 중국은 한국에 대한 제재를 풀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이는 이번 한·중 외교장관 회담 직후의 해프닝에서도 잘 드러났다.

한국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은 세계에서 미국민보다 미국을 더 신뢰하는 국가이며, 동시에 중국을 가장 싫어하는 국가이다. 이는 미래 한·중관계에 엄청난 부담이 된다. 위정자와 전략가들은 이러한 국내적 정서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데 주요한 소재로 활용하곤 한다. 시진핑 체제는 더 안정될 것이다. 이웃 국가로서 강대한 중국이 한국에 주는 위협 역시 점차 더 강해질 것이고, 이를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이웃 국가이자 통상국가인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한국은 현재 어느 강대국과도 적대적 관계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 근본을 잘 지키면서도 화(和)와 친(親)을 추구하는 외교를 해야 한다.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이 “화이부동(和而不同·공동의 이익을 찾되 차이점은 인정한다)”의 정신을 강조한 이유이다. 당당함을 유지하면서도 화(和)를 도모하는 것이 우선이고, 대적하는 것은 최후의 일이다. ‘신냉전’에서 이념적 차별성을 주목하여 냉전의 측면을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은 ‘신(新)’이 주는 의미에 대해 더 고뇌하면서 이 어려운 난제를 풀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한·중관계의 미래 30년은 이 정부의 정책에 따라 결정될 개연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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