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B가 필요하다…공감외교를 추진하라

[김흥규의 외교만사] 플랜B가 필요하다…공감외교를 추진하라

지난 한 달 국제정치에서 큰 획을 그을 만한 두 가지 사안이 발생했다. 하나는 나토 정상회의의 개최이고 다른 하나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암살이다. 이 두 사안은 전혀 다른 사안 같지만, 미국 중심의 탈냉전 국제질서 종언 과정에서 큰 전환점이 되리라는 데에 맥락이 닿아 있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 소장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 소장

지난 6월29~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나토 정상회의는 그 의미가 특별하다. 우선 러시아를 명백한 안보 위협으로 규정하였다. 중국은 유럽-아틀란틱 안보에 대한 체제적 도전을 야기하고 있다고 명시하였다. 이번 회의는 나토가 그간 주 위협의 대상으로 간주하던 러시아, 미국이 주요 도전국으로 인식하고 있는 중국을 겨냥하여 미-나토 간 공동의 대응책을 강구하려는 미국의 의도를 관철시켰다. 동시에 유럽이 중심이던 나토의 영역을 확장하여 인도·태평양 지역까지 안보 공간을 결합하려는 명백한 노력이 있었다. 아·태지역에서 미국의 맹방인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가 처음으로 동시에 초대되었다. 이 회의는 세계적인 차원에서 새로운 냉전적 대립을 공식화한 분기점으로 역사는 기록할지도 모르겠다.

한국은 역사상 최초로 이 나토 정상회의에 초대받았다. 한국의 어느 정부라도 이 초대를 거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세계적인 중추국으로 역할을 다하겠다는 야심 찬 외교안보적 비전을 제시한 윤석열 정부로서는 전 세계에 자신의 어젠다를 제시할 무대로 인식했음직하다. 정부는 가치규범에 입각한 국제연대, 신흥안보 협력,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이라는 윤석열 정부의 목표에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실제 이 정상회의는 우리가 활용하기보다는 규정되어진 공간이었다. 우리의 의지나 기대와는 달리 최상목 경제수석의 탈중 경제 발언에서도 엿보이듯이, 한국은 반중·반러 전선을 형성하는 잔치에 초대되어, 기꺼이 나서려 한다는 이미지를 각인하였다.

주요 강대국은 이미 플랜B 구상

아베 전 일본 총리의 암살이 국제정세에 미치는 영향 역시 과소평가할 수 없다. 아베 전 총리는 미·중 전략경쟁의 핵심적 내용을 담고 있는 인도·태평양 전략과 쿼드 체제의 수립을 제시하고 그 범위를 규정한 인물이다. 그는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억제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전략을 제시하고 쿼드 추진을 통해 중국의 대체재로 인도를 국제무대의 중심부로 부상시켰다. 중국을 억제하면서도 과도한 대립과 충돌을 완화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전략보다는 ‘구상’을 제안하고 ‘자유롭고 개방된’이란 수식어를 반드시 붙이게 하였다. 중국이 행태를 수정하면 언제든 포용할 수 있다는 메시지였다. 도널드 트럼프의 과도한 일국주의를 완화하면서 다자주의를 수용하게 하고,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인도·태평양 전략 앞에 ‘안전하고 번영하는’이라는 수식어로 대체하려 하자 기존의 ‘자유롭고 개방된’을 유지하게 설득하였다. 안보적으로 확고한 미·일 동맹을 표방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중국과의 관계를 꾸준히 발전시켰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그리 달가운 추억은 아니지만, 아베가 꿈꾸던 일본은 ‘전후 일본’의 족쇄에서 탈각한 정상국가였으며, 중국과의 관계에서 충돌보다는 절제와 이익의 조화를 추구하였다. 아베를 잃은 일본은 이를 기화로 보다 강력한 정상국가화를 추구할 것이다. 그러나 아베가 추진했던 장기적 비전과 미묘한 외교를 아베 없는 일본이 제대로 추진할지는 미지수이다. 19세기 말 비스마르크가 없는 프로이센이 연상된다.

이러한 변화들은 미·중 전략경쟁 상황에서 선택의 압박을 받으면서, 미국 중심의 가치 외교를 표방하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통해 명백히 러시아와 적대관계를 선택한 윤석열 정부에 더 큰 부담을 안겨줄 것이다. 일단,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팀은 경제안보가 전면에 부각되는 상황에서 세계 공급망의 주요 축인 러시아-중국과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적대적인 입장에 서고 있다. 그 비용을 당연시하고 과소평가하고 있다. 서유럽은 대러 전선에 단합을 표방하지만, 이번 겨울 혹독한 에너지, 식량, 인플레의 압력하에 그 단합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프랑스와 독일은 이미 러시아와의 거래를 전제하는 듯하다. 미국은 금년 말 중간선거에 직면하여 우-러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를 견디지 못하고 중국과 이미 관세를 낮추기로 합의하였다. 정의가 승리하리라는 우리의 희망과는 달리 러시아는 우-러 전쟁을 승리로 이끌 개연성이 커졌다.

한국만의 비전과 자강력 있어야

세계적으로 보자면 중국은 이미 미국보다 많은 수의 우방을 확보하고 있다. 미국과 서방의 강력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우-러 전쟁에 따른 대러시아 유엔 제재에 찬성한 국가는 48개국밖에 없다. 향후 세계 질서의 향배는 미국보다는 중국이 쥐고 있어 보인다. ‘과학적 유물론’을 신봉하는 중국 지도부는 미국과 서구 중심의 국제관계에 정면 도전하고 충돌하기보다는 편승에 따른 기회주의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경제관계와 토대의 강화를 통해 자연스레 세계 패권을 넘겨받으려 하고 있다. 러시아와 준군사동맹인 것처럼 행동하면서도 서방과 충돌을 피하기 위해 우-러 전쟁에서 러시아를 지원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그러나 나토 2022 전략선언은 러시아와 중국의 연합을 강화하도록 몰고 있어 결국 중국의 선택이 주목된다.

세계의 주요 강대국들이 이미 플랜B를 구상하는 마당에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구상에는 플랜B가 없어 보인다. 무능했던 문재인 정부의 우파적 버전이 아닌가 우려된다. 이념과 가치를 깃발에 걸고 마치 십자군전쟁에 나가는 기독교 전사와 같은 결기만 느껴진다. 미국이나 유럽 시장이 이미 미국, 일본, 유럽 시장을 합한 것보다 거래가 많은 한·중 무역을 대체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한다. 한국과 같은 통상국가가 가치를 전제한 외교에 치중해서는 곤란하다. 세계의 절반 이상은 민주국가가 아니다. 민생은 뒷전이 된다. 다가오는 겨울은 더욱 혹독할 것이고, 민생은 파탄지경일 것이다. 국제정치의 정글에서 어느 나라도 한국호를 구할 수 없다. 우리 스스로의 비전과 자강력이 중요하다. 아니면 폐허가 된 한국호에 깃발만 나부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주위의 탈레반들에 모든 것을 맡기기보다는 자신의 눈과 귀를 열고, 여야와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말고 각 분야 전문가들을 불러 모아 논쟁하게 하여야 한다. 최고의 원로들을 모아 입을 열고 허심탄회하게 말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이 혹독한 겨울을 배겨낼 온기를 찾을 희망이 그나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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