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안 통하는 세상

조광희 변호사

연초에 화제가 된 워들(wordle)이라는 게임이 있다. 여섯 번의 시도 안에 다섯 개의 알파벳으로 이루어진 단어를 맞혀야 한다. 사용자가 어떤 단어를 제시하면, 그 단어를 구성하는 알파벳이 정답에 포함되어 있는지, 그리고 위치도 맞는지 피드백을 준다. 사용자는 그 피드백을 바탕으로 정답을 추론하게 된다. 이 게임의 기본전략은 각 알파벳의 출현빈도를 고려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E가 정답에 포함될 가능성은 Q가 정답에 포함될 가능성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초기에 E가 포함된 단어를 제시하는 게 유리하다. 알파벳의 출현빈도를 고려하는 전략은 암호 해독의 기본이기도 하다.

조광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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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고개라는 놀이에도 기본전략이 있다. 이 놀이의 원리를 이해 못하는 아이는 행운을 기대하며 ‘얼룩말? 코끼리?’ 같은 답변을 남발하지만, 똑똑한 아이는 ‘생물이야, 무생물이야?’ 같은 추상적인 질문으로부터 점점 구체적인 질문으로 좁혀간다.

이러한 놀이의 근저에 있는 의사소통의 원리와 관련하여, 클로드 새넌이 창시한 새넌 엔트로피(Shannon Entropy)라는 중요한 개념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새넌은 메시지를 정확히 주고받는 데 필요한 정보의 양을 수학적으로 밝혔다. 예를 들어, 동전을 두 번 던진 결과에는 4가지가 있는데, 그 결과에 관하여 의사소통을 하려면 몇 비트의 정보가 필요한지 계산하는 것이다. 새넌은 메시지 통신에 필요한 최소 비트 수를 계산하는 공식을 제안했는데, 그 임계치를 새넌 엔트로피라고 한다. 이것은 메시지의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예’ 또는 ‘아니요’라는 답을 듣기 위해 던지는 질문의 수라고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도 스무 번의 질문이면 어떤 기발한 단어에도 근접할 수 있다. 놀이 제목이 서른고개나 마흔고개가 아닌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놀이, 정보기술 또는 이상적인 의사소통에 해당된다. 현실은 난감하다 못해 참담하다. 전혀 어려울 것 없는 메시지를 소통하는 것이 때로는 얼마나 어려운가? 조직에서 괴로운 것은 업무 자체보다도 의사소통이다. ‘이 단순한 의사소통이 왜 이토록 오해로 귀결되는가’라는 자괴감이 영혼을 잠식한다. 부부 사이의 의사소통을 보라. 새넌의 이론에 따라 해결할 수 있다면 가정법원은 문을 닫아야 한다. ‘설거지의 분담’이라는 기본 메시지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가정이 부지기수다. 의사소통은 논리의 문제를 넘어서 저마다의 경험과 욕망을 토대로 자아를 주장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훌륭한 의사소통 능력은 지력 못지않게 인격과 비례한다. 개인의 의사소통이 이럴진대, 사회적 의사소통은 얼마나 어려울까.

‘눈 떠보니 선진국’이라는 한국의 의사소통 능력은 비참하다. 집단적 의사소통 능력이 이 지경인데도 이렇게 발전했다는 게 기적이다. 정치적 의사소통은 불통의 대명사다. 같은 사안을 두고 이해하는 바가 너무 다르다. 지지자들도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은 지고지순하며, 경쟁자는 시쳇말로 생양아치라고 생각한다. 협치는커녕 ‘너 죽고 나 죽자’는 극한대결의 무한반복이다.

정치를 탓하는 언론도 난형난제다. 어떤 논란이 발생한다. ‘어떻게 된 일일까’ 알아보려 온갖 매체를 살펴본다. 그런데 누가 옳은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사실은 실종되고, 진영과 인상비평만 남는다. ‘그만 알아보자’는 체념만이 남는다. 보통사람들의 의사소통은 어떨까. 나는 언제인가부터 댓글을 거의 읽지 않는다. 여론에 제법 영향을 주지만, 각자 제 말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목소리가 크면 이익을 보는 뒤틀린 세상이다. 논란을 일으켜 인지도가 올라가면 돈과 권력을 얻는 허울 좋은 공동체다. 변호사로서 자주 처리한 업무 중 하나가 명예훼손이나 모욕 그리고 혐오발언을 일삼는 익명의 악플러들을 확인하고 벌주는 일이었다. 그들 중에는 정신적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도 드물지 않았지만, 오프라인에서는 멀쩡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많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것은 개인적 일탈의 문제만은 아니다. 사회적 의사소통 시스템의 총체적 실패가 그들이 번성하는 비옥한 토양이다.

새넌의 이론에 따른 수학적인 의사소통은 바라지도 않는다. 철학자 하버마스가 기대했던 합리적 의사소통도 지금의 한국에서는 백일몽일 뿐이다. 정보를 종합하면 진실을 가늠할 수 있고, 적어도 몇 개 매체는 신뢰할 수 있으며, 정치인에게 평균보다 높은 지성과 품격을 기대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가. 이 공동체는 이런 문제의 해결 없이도 계속 발전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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