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기업총수·정치인을 선택 못한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

지난주 세 가지 큰 기업 이슈가 있었다. 카카오 블랙아웃, SPC 계열사 노동자 사망사고와 레고랜드 사태다. 사건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고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자. 첫째, 재난관리, 안전관리 및 플랫폼 독과점 규율부터 정비에 들어가는 것이 우선이다. 제발 자율적으로 풀게 하자라는 고장 난 레코드 또 돌리지 말자. 채이배 전 국회의원의 인터뷰로 우리는 2년 전 카카오, 네이버 등 IT 기업의 재난관리를 강화하는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이 IT기업협회와 유력 로펌의 로비로 좌초되었음을 알았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

이창민 한양대 교수

이번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플랫폼 독과점을 언급하자마자 일부 재계, 언론, 학자들이 시장에 맡기면 된다며 플랫폼 규제강화 반대에 군불을 지피고 있다. 지금 텔레그램, 라인 등에, 또 새로운 메신저가 시장에 들어오면 소비자가 알아서 갈아 탈 거란다. 이 사람들은 시장보호가 아니라 시장지배자 보호에 여념이 없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카카오에 묶여 있음을 알았다. 지난주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IT에 매우 친숙한 20대의 79%는 계속 카카오를 이용할 거 같다고 했다. 자, 욕은 신나게 했지만 카카오에서 실제 탈출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카카오를 선택하지 못한다. SPC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있지만 이게 얼마나 지속 가능할지 의문이다. 소비자들의 의지를 비하하는 게 아니다. SPC 브랜드만 베스킨라빈스, 던킨, 쉐이크쉑, 에그슬럿 등 곳곳에 퍼져 있는 것을 소비자들이 그때마다 친구랑 가자 말자 실랑이하는 것만으로 문제를 풀 수는 없다. 또, 지난 1월 이미 공정위는 플랫폼 분야의 경쟁제한행위 예방을 위한 심사지침을 1년반의 민관합동 논의를 거쳐 마련해 놓았다. 시장의 경쟁촉진을 위해 진즉에 했어야 할 것을 이제 하는 것이고 심지어 새로운 규제를 신설하는 것도 아니다. 온라인 플랫폼 기업의 시장에서의 경쟁제한적 행위는 전통적 기업과 많이 다르니 자사우대, 최혜대우 등이 경쟁제한 행위라고 심사기준을 구체화한 것일 뿐이다. 자유타령도 좀 적당히 하자.

두 번째, 카카오의 남궁훈·홍은택 대표이사는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사과를 하고 남궁훈 대표가 물러났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와 SK 최태원 회장은 이번주 국감에 뒤늦게 나타났다. SPC는 사과문만 발표했다가 비난여론이 강해지자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총수인 허영인 회장이 직접 고개를 숙였다. 최근 카카오를 보면 뭔가 이상하다. 카카오 주요 계열사의 주가는 연초 대비 50~70% 떨어져 있는데 작년 카카오페이 경영진 스톡옵션 먹튀부터 시작해서 사건이 많았다. 이상한 행동의 정점은 얼마 전 카카오게임즈 아래 회사인 라이언 하트 스튜디오 상장추진이었다. 가뜩이나 주식시장에서 비판을 많이 받고 있는 비상장계열사 상장을 카카오가 추진한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에 창업자 김범수의 근본적 결단이 사라졌다. 사과하고 또 하고 사과하고 또 한다. 그에게는 자수성가한 창업자로서 기존 재벌총수와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말이다. 우리는 총수일가를 선택하지 못한다. 시장과 사회의 비판이 전문경영인은 물러나게 해도 총수 일가는 굳건하다. 그들의 왕국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기댈 것은 지배구조에 대한 외부규율과 총수의 진정한 자기성찰인데 이 자기성찰에 대한 믿음은 우리를 자주 배신해왔다. 이번에 SPC가 기자회견에서 내어놓은 회사 내 안전경영위원회 설치가 여론의 소나기를 피한 후 어떻게 굴러가는지 살펴보면 될 일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아파트 건설현장 붕괴사고 이후 안전보건위원회를 설치하였으나, 위원회 구성 및 위원장 선임 등을 이사회에서 처리하고 2022년 6월까지 한 차례도 위원회를 소집하지 않았다.

마지막이다. 김진태 강원지사가 금융시장에 폭탄을 던졌다. 강원중도개발공사가 빌린 2050억원에 대한 지급보증을 철회한 것이다. 전임 지사와 각을 세우려는 정치적 의도이든, 강원도민의 세금 아끼기라는 건전재정철학이든 그의 한마디에 채권시장은 ‘아작이 나고’ 경기에 영향이 큰 건설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우리는 정치인을 온전히 선택하지 못한다. 소속정당과 주요공약 등 제한된 정보로 선거에서 선택할 뿐 권력이 위임된 후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건 사과뿐이다. 그래서 부탁드린다. 어설픈 자유시장철학을 실험하려고 들지 마시라. 갑자기 지급보증을 철회하고 회생을 신청하면 시장에서 아 이제 정부라는 비효율이 사라진 진정한 시장경제가 온다며 쌍수를 들고 환영할 줄 알았나? 경제위기는 금융시장 경색에서 출발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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