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안전을 위한 파업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도대체 누구를 위한 파업인가. 민주노총의 오만한 대국민 협박에 진저리가 난다.” 지난 22일 국민의힘은 최근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이 같은 논평을 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귀족노조’ 프레임을 다시 들고 나왔고, “생때같은 줄파업” “불법투쟁” “대국민 갑질” 등의 발언이 여당 쪽에서 일제히 쏟아졌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화물연대 파업과 관련해 ‘불법’과 ‘폭력’으로 규정했다.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학교 급식조리사들이 노동을 중단하고, 화물차들이 운송을 멈추고, 건강보험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전화기를 내려놓고, 지역난방 열배관을 점검하는 일이 중단됐다. 이러한 ‘물리적 타격’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폭력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거꾸로 누가 노동자들의 파업을 폭력으로 규정하는지 그 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익’을 연신 입에 올리는 대통령과 정부는 할 일을 마땅히 하지 않아 이태원 참사를 막지 못했다. 국가가 경찰을 동원해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것만이 폭력은 아니다. ‘부작위에 의한 폭력’ 즉 노동자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 생명을 약화시키거나 죽음에 노출시키는 행위 역시 폭력이다. 제도적 경제적 차원의 폭력들은 주로 법을 제정하고 집행하는 권력에 의해 행사된다.

급식노동자들은 2021년에야 음식을 튀기고 볶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물질로 폐암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환기시설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조리실에서 적은 인력으로 충분한 휴식 없이 일했지만, 정부와 학교당국 누구도 폐암의 위험성을 알려주지 않았다. 2022년 9월 건강검진을 받은 급식노동자 5979명 중 27.3%인 1643명이 폐암 이상 소견을 받았다. 대체 얼마만큼의 급식노동자들이 폐암에 이르고 있는지 가늠조차 안 된다. ‘아이들을 볼모로’ 폭력을 행사한다던 노동자들은 폐암에 대한 대책마련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해소하라고 요구한다.

화물 노동자들은 하루 14~16시간 이상 노동을 하고 하루 2~3시간 수면으로 버티면서 ‘졸음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의 두려움을 호소한다. 전국 고속도로에서 사망 교통사고의 64.8%가 화물차에 의해 일어났다. 자신들이 ‘도로 위의 흉기’가 되어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을 막아달라는 것이 ‘안전운임제’에 대한 요구다.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에는 화물차 운전자의 최소 휴게시간을 정해놨다. 2시간마다 15분 이상. 법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5개월 전 화물연대가 파업했을 때 윤석열 정부는 안전운임제를 추진해 안전사고의 위험을 줄이기로 약속했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파업을 하는 이유를 들여다보면 모두 정부의 인력감축이나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나아가 자신의 불안한 노동이 시민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고통을 이야기한다. ‘귀족노조’의 ‘대국민 갑질 파업’은 비정규직 노동자들, 노동자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화물노동자들, 구조조정과 안전인력 감축을 반대하는 노동자들에 의해 수행되고 있다. ‘국익’과 ‘불법’을 따지기 전에 묻자. 정부가 방기하는 생명·안전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는 파업은 정당한가. 정당하다면 그것은 폭력이 아니라, 폭력에 대한 비판이다.


Today`s HOT
휴전 수용 소식에 박수 치는 로잔대 학생들 침수된 아레나 두 그레미우 경기장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해리슨 튤립 축제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