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투어리즘과 이태원 참사

문주영 전국사회부장

다크투어리즘은 잔혹한 참상이 벌어진 역사적 장소나 재난·재해 현장을 둘러보며 반성과 교훈을 얻는 여행을 말한다. 유대인 대학살 현장이었던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대표적이다. 죽음을 터부시하는 한국사회에선 다소 낯선 방식의 체험여행이지만 최근 몇년 전부터 기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제주도가 전국 처음으로 2020년 ‘다크투어리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항일운동, 제주 4·3사건 등을 중심으로 여행 프로그램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광주전남연구원도 최근 “지역에 일제강점기 잔재와 5·18 민주화운동 사적지 등 다크투어리즘 관련 자원이 288곳에 달한다”라며 이를 활용한 관광 콘텐츠를 적극 개발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문주영 전국사회부장

문주영 전국사회부장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100일이 좀 넘었다. 국정조사는 끝났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참사 책임자로서 국회에서 탄핵됐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로 인한 갈등과 국민 분열은 현재 진행 중이다. 서울광장 분향소 설치를 놓고 유가족들과 서울시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보면 한국 사회가 참사, 특히 추모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가 확연히 드러난다.

분향소 위치를 놓고 양측 사이에서 오갔던 협의 과정을 보면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서울시가 지난해 말부터 유가족 측 대리인과 협의해 참사 발생 지역 인근에서 장소를 물색해왔고, 그렇게 제안한 곳이 녹사평역 지하 4층이었지만 유가족 측으로부터 피드백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반면 유가족 측은 추모제를 앞두고 서울시와 분향소에 관해 논의했지만 별 언급이 없어 광화문광장 인근 세종로공원을 분향소 장소로 요청했고, 서울시가 이를 거부한 후 갑작스레 녹사평역을 제안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양측의 입장에는 간극이 존재하지만 분명한 것은 서울시가 참사 책임 지자체로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을 대하는 자세에서 타협이나 양보의 의지가 크게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대신 법과 원칙을 앞세우며 강경 대응하고 있다. 오신환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유가족들을 향해 “그 배경이 무엇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고, 급기야 서울시는 지난 10일 분향소의 서울광장 설치에 대해 시민 60%가량이 반대하고 있다는 설문조사를 발표하기도 했다.

사석에서 만난 서울시 관계자들 역시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은 “관련 법과 근거가 없기 때문에 서울광장 또는 광화문광장에 분향소나 추모공간 등을 설치하도록 내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서울시의 이 같은 태도는 보수층 지지를 얻는 데 효과가 있을지는 몰라도 문제 해결은커녕 사태만 더 악화시키고 있다.

‘추모’의 사전적 의미는 죽은 사람을 그리며 생각하는 것이다. 기실 추모 행위에는 수많은 내포적 의미와 사회적 신호가 담겨 있다. “추모시설은 생존자와 유족에게 치유와 회복의 공간이며 더 나아가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약속하는 사회적 합의의 장치”라는 김명희 경상국립대 교수의 말처럼 추모를 통해 시민들은 반성하고, 당국은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한걸음 더 다가가게 된다.

지난 수십년간 적지 않은 참사들을 겪었음에도 계속해서 참사가 이어지는 데는 제대로 된 추모 공간이 없었던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들어설 예정인 세월호 추모 공간 ‘4·16생명안전공원’의 경우 공사 전 주민들 사이에서 반대가 극심했다. 우리 사회에서 그간 추모 시설은 혐오 시설로 인식돼 왔다.

그런 점에서 전남 진도군이 올해 7월 문을 여는 국민해양안전관을 중심으로 ‘세월호 기억의 숲’과 진도항의 ‘빨간 등대’ 등을 묶어 다크투어리즘 상품으로 구상하고 있다는 소식은 눈에 띈다. 안산시도 향후 4·16생명안전공원에 유가족과 생존자들을 위한 시설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휴식·문화·교육 공간을 마련해 주민 화합을 추구하는 등 추모를 통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태원 참사 분향소 설치와 관련해 서울시도 행정상 원리·원칙만을 내세울 게 아니라 유가족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둘로 쪼개진 시민들을 화합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총리 시절 국내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난민과 이민자 수용에 적극 나섰던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최근 유네스코 평화상을 받은 뒤 이렇게 말했다. “대화는 약자가 아닌 강자의 무기입니다.” 강자로서 약자에게 먼저 손 내미는 서울시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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