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균 뉴콘텐츠팀장

지난해 12월, 챗GPT가 주목받기 시작했을 때 진지하게 ‘특이점이 왔다’고 생각했다. 해류 측정 온도계, 인쇄술, 내연기관, 전신과 전구, 인터넷, 아이폰, 그리고 인공지능(AI). 이제 인류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 바뀔 것 같았다.

이용균 뉴콘텐츠팀장

이용균 뉴콘텐츠팀장

챗GPT 열풍은 약 석 달이 지난 지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챗GPT 놀이’다. 사람들은 대화 생성형 AI의 빈틈을 찾았다. 챗GPT에게 ‘윤석열·한동훈 폭행사건에 대해 알려줘’라고 물으면 ‘진지한 대답’을 한다. 어느 때는 2019년 서울의 한 유흥주점에서 언쟁에 이어 폭행사건이 있었다고 답하고, 또 다른 때는 2022년 12월 강남 일대에서 둘이 함께 손님을 폭행한 사건이었다고 설명한다.

물론 사실무근이고 거짓이다(챗GPT를 허위사실 유포 혹은 명예훼손으로 고발할 수준은 아닐 거라 믿는다).

한때 그럴듯해 보였던 대답 속 참과 거짓을 구별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챗GPT는 ‘전지전능’의 AI가 아니라 ‘아무말대잔치’ 능력자에 가까워졌다. 거짓을 참이라고 밀어붙이면 챗GPT는 곧 참이라고 인정했다. 챗GPT는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고, 의도와 관계없이 질문과 연관됐을 법한 정보(혹은 말뭉치)를 확률대로 끌어모아 그럴듯한 대답을 만들어낸다.

2016년 3월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가 떠오른다. ‘인류 대표’ 이세돌은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에게 첫 3국을 모두 패했다. 3국 모두 완패에 가까웠다. 5전3선승제에서 3승을 이미 내준 상황에서 4국째, 이세돌은 180수 만에 백 불계승을 거뒀다. 커다란 화면에 ‘알파고 기권(resigned)’이 떴다. 승부를 뒤집은 것은 흑돌 사이에 끼워넣은 이세돌의 78수였다. 알파고는 계산이 흔들렸고, 우왕좌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 결국 돌을 던졌다. AI를 흔든 건 뛰어난 영감, 치밀한 계산이 아니었다. 이세돌은 나중 인터뷰에서 “꼼수”라고 답했다.

세상에 균열과 빈틈을 내고,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는 비밀은 ‘78수’와 같은 꼼수에 있다. 기존의 통념과 규칙을 모두 흔드는 의외성이 만들어내는 파열음이다. 변칙과 파격, 눈치 보지 않는 과감한 질문이다. 챗GPT를 흔드는 요상한 질문들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또 다른 ‘78수’다.

그리고, 지금 ‘78’은 대한민국 사회를 떠다니는 숫자다. 지난달 22일 2022년 인구동향조사 출생·사망 통계가 발표됐다. 2022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이었다. 가임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자녀의 숫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평균은 1.59명이다. 1.0명에 못 미치는 유일한 나라다. 0.78명은 세계 현대사를 통틀어도 보기 힘들다.

동시에 미래에 대한 불안과 가치관의 변화를 상징하는 숫자다. 가족을 위한 성취 압력이 극심한 유교 문화 자기장 안에서 출산과 양육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현재 사회 구조에서 출산과 양육은 ‘나의 희생’을 기반으로 한다. 출산, 육아의 부담이 몰리는 여성에게 더욱 강한 압력이 될 수밖에 없다. 내가 성공하지 못하면, 자녀의 계급 상승은 더욱 요원한, 사다리 걷어차기와 가난 대물림의 악순환이다.

여전히 ‘자유’로 포장된 ‘능력주의’와 이를 통한 경쟁을 사회 발전의 기본 시스템으로 삼아서는, 앞으로 또 280조원(지난 16년간의 저출생 대책 예산)을 때려박아도 해결할 수 없다. ‘아빠가 검사’ 수준이 아니라면 학교폭력을 당해도, 당했다고 신고를 해도, 그걸 다 인정받아도 정신과 상담을 받아가며 1년 동안 학교를 같이 다녀야 한다. 내가 검사가 아니라면, 대한민국에서 애를 낳는 건 죄다. 대놓고 이런 신호와 메시지를 내뿜는 세상에서 다들 SKY를 다니다 자퇴를 하고 n수를 통해 의대를 가려 하는 건 당연한 선택이다. 한때 인기 많았던 교대는 이제 미달을 걱정할 수준이다(그런데, 의사와 검사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중력 탈출을 위한 초속 11.2㎞의 힘, 이세돌의 ‘78수’와 같은 전복의 수가 절실한 상황이다. 하지만 현실은 1978년 수준으로 퇴행 중이다. 노조는 ‘적’이 되었고, 노동시간은 늘어났다. 과거와 다른 시간당 노동강도 따위는 ‘라떼는 말이야’라는 주관적 감성으로 대체돼 무시됐다. 계급은 강화되고, 위계에 의한 피해는 더 높은 계급이 되지 못한, 당한 이들의 잘못이 됐다. 모두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1978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출간됐다. 고 조세희 작가가 바라던 ‘난쏘공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는 아직 멀어 보인다. 이런 제길, 칠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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