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가 와도 사교육은 못 잡는다

오창민 논설위원

육군 소장에서 일약 최고 권력자가 된 전두환이 민심을 얻기 위해 들고나온 정책이 과외(사교육) 전면 금지였다. 박정희 정권 때 실시한 중학교 무시험제와 고교 평준화도 따지고 보면 사교육을 줄이기 위한 방편이었다. 해방 이후 한국의 교육정책 역사는 사교육과의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방송(EBS)에서 학원 강사를 불러 대학수학능력시험 강의를 하고, EBS 교재와 연계해 수능 문제를 출제한 것도 모두 사교육을 줄이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오창민 논설위원

오창민 논설위원

윤석열 정부도 사교육을 잡겠다고 나섰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은 26조원으로 전년보다 10.8% 증가해 2년 연속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학생 수는 4만명이 줄었는데 사교육비는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영향이라고 해도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입시 개편 같은 교육정책으로 사교육 줄이기는 불가능하다. 특히나 경쟁을 지향하는 ‘이주호 교육부’ 체제에서는 사교육이 늘망정 줄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출세한 사람이라도 자녀가 대학에 못 가거나 정규직이 못 되면 그 순간 인생이 낭떠러지로 추락한다. 서민들은 계층 상승을 꿈꾸며 박봉을 사교육에 털어넣고, 중산층 역시 그나마 갖고 있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사교육에 올인한다. 조국이 자녀의 스펙을 만들기 위해 표창장을 위조한 것이나 정순신이 아들의 학교폭력 행위에 소송을 거듭하며 잔머리를 쓴 것도 한편으로는 이런 불안감이 작용했을 것이다.

세상엔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있다. 학벌과 학력도 한때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수능은 반복해서 치르면 점수가 올라간다. 돈을 들여 스펙을 쌓고 컨설팅을 받으면 수시모집 합격 가능성은 올라간다. 사교육과 입시경쟁은 동전의 앞뒤처럼 불가분의 관계다. 입시는 일종의 선별 과정이다. 이른바 의치한수약대와 SKY대에 진학하는 사람은 2만명으로 정해져 있다. 서울 4년제 대학과 지방의 거점 국립대·교육대 정원은 10만명 안팎이다. 비정상적이고 비효율적인 경쟁이 벌어지지만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사교육은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학부모는 등골이 휘고 학생들은 책걸상에 몸을 고정시킨 채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런데도 모두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남을 믿지 못하니 나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죄수의 딜레마 같은 상황이다. 모든 사람이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다. 사교육업체들은 불안을 마케팅 재료로 활용한다. 개미지옥처럼 알면서도 빠져드는 것이 사교육 선행학습이다. 요즘은 초등 저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의대 진학반까지 생겼다고 한다.

해법은 판을 엎고 게임을 중단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사교육을 안 하거나 못하게 하는 것이다. 1980년 과외 전면 금지 조치는 신군부를 증오하는 사람들조차 지지했다. 그러나 과외 금지 조치는 2000년 헌법재판소에서 기본권 침해로 위헌 판결이 났다. 한동훈·이복현 같은 무소불위의 검사 출신이 나서도 법과 관치로 사교육을 때려잡을 수 없다. 그러는 사이 사교육은 이미 막강한 권력으로 부상했다. 입시학원의 수능 배치표 한 장에 서울대 의대부터 지방 전문대학까지 전국의 모든 대학과 학과가 한 줄로 세워진다. 1년에 수백억원을 쓸어담는 일타강사들은 선망의 대상이 돼 드라마의 주인공으로도 나온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다. 사교육 성행에 따른 저출생이 역설적으로 사교육에도 쇠퇴를 가져올 것이다. 한 해 신생아가 100만명이던 시대와 25만명인 시대는 경쟁의 강도가 다르다. 앞으로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더 귀해지고, 미약하나마 학생 개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중시하는 풍토가 조성될 것이다. 사회의 생산을 담당하는 기업들의 변화도 감지된다. 학벌 좋은 사람을 뽑는 것이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 기업일수록 학벌보다 성과와 능력을 중시한다.

사교육은 교육정책만으로 잡을 수 없다. 능력 위주의 채용 관행이 정착되고 이에 대한 학부모들의 믿음이 있어야 한다. 복지가 탄탄하고 사회안전망이 촘촘해질수록 사교육 수요는 줄어든다. 굳이 교육정책을 쓴다면 공교육의 질을 높이는 원론적인 방법밖에 없다. 세계 어디나 사교육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는 양질의 공교육 시스템과 학교 교사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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