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어쩌다 웰빙정당이 됐나

이용욱 논설위원

굵직굵직한 정치 이슈에 가려졌지만, 최근 눈길이 갔던 뉴스는 더불어민주당 최대 의원 모임이라는 더좋은미래(더미래) 소속 의원들이 임시국회 회기 중인 지난 2일 베트남으로 워크숍을 떠났다는 것이다. 논란이 되자, 더미래 측은 “당의 진로와 총선 준비, 진보의 재구성 방안을 준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러나 당 진로와 총선 준비 논의를 왜 베트남에 가서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었던 관광업계 활성화를 위한 깊은 뜻이라도 있었던 것인가. 더미래 측은 귀국 후 “민주당의 신뢰 회복, 혁신, 단결이 가장 중요한 당면 과제라는 인식을 공유했다”고 했다. 베트남까지 가서 난상토론해 얻은 결과가 고작 이것인가.

이용욱 논설위원

이용욱 논설위원

그나마 더미래 측의 해명은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유명 관광지인 할롱베이를 찾는 등 관광 일정을 소화했으며, 일부는 마사지숍을 갔다고 한다. 일정도 당초 알려진 2박3일이 아니라 3박4일이었다. 심지어 민주당 관계자들도 더미래 측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의원들이 워크숍을 명분 삼아 외유를 떠나는 게 어제오늘의 일이냐고들 했다. 더미래 소속 의원 보좌진을 지낸 인사의 말이다. “더미래 의원들은 매달 20만원 회비를 낸다. 워크숍은 1년 동안 쌓인 회비를 털어내기 위해 가는 것이다. 국회로부터 경비 지원을 받지 않았다고 했지만, 의원들은 사비가 아닌 후원금으로 회비를 낸다. 결국 외유비용도 다 국민 돈이다.”

더미래의 정치적 비중이 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더미래 행태를 보면서 민주당이 국민의힘 못지않은 ‘웰빙정당’이 됐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이 처참한 시국에, 국회를 열어놓고 외유가 웬말인가. 지나친 웰빙 추구는 무기력을 부르게 마련이다. 현안에 대한 치열한 토론은 사라졌고, ‘어떻게든 되겠지’ 주의도 팽배하다. 의원들은 말끝마다 민생을 외치지만, 진심이 없다 보니 울림이 작다. 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에 당이 끌려가고 있음에도, 다수 의원들이 침묵하는 것도 웰빙당의 증거일 터다. 내년 총선 공천을 의식해 이 대표와 친명계 눈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의원들은 몸을 사린다.

당의 주축이라는 586의 변절도 민주당이 웰빙정당이 됐음을 보여준다. 이들은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과거를 잊은 듯 기득권 세력인 양 굴었다. 자녀들의 호화 해외유학 논란, 보좌진 성희롱 사건 등이 586 인사들에게서 불거졌다. 끼리끼리 어울리다 보니, 자신들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으며, 어떻게 비치는지 모르는 듯하다.

국회의원 보좌진 등의 페이스북 익명 공간인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 최근 올라온 글들이다. “의원들이 결의에 차서 김건희 특검 농성하자면서 야외에 천막은 쳤는데 정작 보좌진들만 밤샘시키고 의원들은 코빼기도 안 비치는 것은 무슨 경우입니까. 보좌진을 대타로 세울 거면 그냥 천막은 거두세요. 농성은 자기의 양심과 결의로 하는 것이지 남이 대신해줄 수 있다는 발상이 새롭습니다.” “요즘 민주당 많이 어색합니다. 원래 당대표가 무슨 손톱만 한 논란이 있어도 끌어내리지 못해 안달인 집단이었는데요. 언제부터 당대표의 범죄까지 끌어안고 가는 정당이 된 거예요?” 무사안일, 천하태평했던 20여년 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이 꼭 이런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민주당 의원들은 앞날을 낙관한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심판 여론이 큰 만큼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만하고 게으른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 역주행의 뒷배가 되고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가. 각종 조사에서 드러나듯 민주당에 대한 여론은 윤석열 정부 못지않게 험하다. 거대야당 민주당이 국회에서 제 역할을 했다면 윤 대통령은 지금처럼 폭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총선을 생각하며 속으로 웃을 게 아니라, 덩칫값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국민들에게 미안해해야 한다.

민주당 전신인 열린우리당은 ‘백팔번뇌’ ‘무질서한 정당’으로 불렸지만, 당시 의원들에게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진심이 있었다. 출입기자 시절 사석에서 양극화·남북문제 등 현안에 대해 의원들과 토론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시절 일부 의원들의 치기 어린 언행들과 미숙함을 미화하려는 게 아니다. 민주당 다수 의원들이 정치를 시작했을 당시 초심을 떠올리며 기득권 웰빙정당으로 전락한 현재를 자성했으면 해서 하는 말이다. 중산층·서민의 대변자가 되겠다는 마음가짐을 회복하는 것을 당 재건의 출발점으로 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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