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필요 없다?

차준철 논설위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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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은 코끼리에 곧잘 비유된다. 코끼리처럼, 인공지능은 누구의 관점에서나 거대한 주제이고 그에 대해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군맹무상(群盲撫象), 여러 맹인이 제각기 코끼리를 더듬는다는 우화가 안성맞춤이다.

차준철 논설위원

차준철 논설위원

인공지능을 깊이 통찰한 고 이어령은 유작 <너 어떻게 살래>에서 “알파고는 코끼리처럼 왔다”고 했다. 600년 전 조선 땅에 코끼리가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2016년 알파고가 세간의 ‘충격’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마다 코끼리의 한 부분만 만지는 듯 틀린 말도 옳은 말도 아닌 의견을 표출했는데, 알파고에 꽤 놀란 터라 인공지능을 인간의 식량을 축내는 코끼리처럼 인간의 직업을 빼앗거나 인간의 안전을 위협하는 괴물로 여기는 논평이 많았다고 짚었다.

알파고에 비견되는 근래 생성형 인공지능 ‘챗GPT’의 열풍에도 코끼리가 떠오른다. 제각기 호기심으로 테스트하고, 대단하다거나 미흡하다는 엇갈린 반응을 내고 있다. 챗GPT의 강·약점을 분석하고 대처 방안을 모색하는 논의도 활발해졌다. 분명한 점 하나는, 챗GPT 등장이 인공지능과 미래 일자리 문제를 다시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까.

화가, 작가, 지휘자·작곡가, 무용가·안무가, 가수…. 한국고용정보원이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를 토대로 2016년 조사·발표한 ‘자동화 대체 확률 낮은 직업’의 최상위권이다. 디자이너, 교수, 의사, 판검사 등도 뒤를 이어 상위권에 포진했다. 감성에 기초한 예술 관련 직업과 중요한 의사결정이 있는 직무는 인간이 맡게 될 것이므로 일자리 소멸을 불안해할 필요 없다는 분석이 따랐다. 과연 그럴까. 그림과 노래를 뛰어넘어 글로, 언어로 사람이 요구하는 대로 창작물을 척척 내놓는 챗GPT가 나오면서 인간의 창의적인 일에 대한 낙관론이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언어능력을 갖춘 챗GPT가 다양한 지식을 바탕으로 단시간에 시를 읊고 기사·연설문·논문을 쓰고 코딩도 하고 어떤 질문에든 답문을 제시하는 것은 기본 성능이다. 미국에서는 경영학 석사과정 졸업시험에 합격하고 로스쿨과 의사면허 시험까지 통과했다. 챗GPT가 경영대학원생, 변호사, 의사 수준의 지식과 언어능력을 갖춘 셈이다. 최근 국내에선 출판기획자의 기획안에 맞춰 챗GPT가 전부 쓴 책이 처음 나오기도 했다. 단 7일 만에 출간됐다고 한다. 지적인 노동 부문에도 자동화와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증거다. 이제 인간의 전문직으로 여겨졌던 일자리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모두 대체되지는 않더라도 자리가 줄어들 게 분명하다.

인공지능과 일자리에 관한 논쟁은 인공지능이란 용어가 생긴 1956년 이후 지속돼 왔다. 첨단기술 발달에 따른 자동화로 인해 사람의 일자리가 기계로 대체된다는 ‘노동의 종말’론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그러나 반대편에선, 정형화되고 루틴한 단순 업무가 줄어드는 대신 지식산업 분야에 더 많은 일자리가 생긴다는 낙관론을 폈다. 기술을 유효적절히 다루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전문가 영역의 직종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도 일자리를 빼앗는 게 아니라 단순 반복 업무를 맡아줌으로써 인간이 더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챗GPT가 나타난 지금은 노동의 종말을 넘어서 인간 창의력의 종말, 인간이 주도하는 세상의 종말을 우려해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 인공지능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갖출 능력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창의력, 사람의 마음을 읽는 협상력, 상대방과 감정을 나누는 공감능력, 함께 머리를 맞대는 협동력이 꼽히는데 왠지 답답하다. 창의력부터 인간의 영역으로 지키기가 막막해 보인다. 챗GPT를 능가하는 창의력을 발휘하는 극소수 초(超)전문가만 남는 게 아닐까.

혹자는 챗GPT가 인간의 사고를 뛰어넘어 스스로 생각하는 ‘강(强)인공지능’이 아니고, 그런 인공지능은 먼 미래에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데이터가 쌓이고 언어능력이 강화되면 챗GPT는 금세 똑똑해질 것이다. 챗GPT와 나눈 대화를 책으로 낸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는 지금의 챗GPT를 다가올 강인공지능의 티저로 볼 수 있다고 평했다. 맞다. 챗GPT가 지금까지 내보인 건 창작능력만이 아니다. “미래에 인간은 필요 없다”고 강력히 말한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할까. 인간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이것부터 찾아내는 게 급선무다. 이마저 챗GPT에 물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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