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 동지의 분별과 현명함

김윤철 경희대 교수·실천교육센터장
[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적과 동지의 분별과 현명함

여야 할 것 없이 작금의 정치판을 온통 휩쓸고 있는 적과 동지의 구분은 저질이며,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아둔하고 반정치적이기까지 하다. 견고한 성을 쌓는 것 같지만, 그것이 고립의 성임을 모르고 있다
적과 동지의 구분에도 현명함이 필요하다는 걸 상기해야 한다. 기대난망이려나?

현명함. 어질고 슬기로워 사리에 밝음을 뜻한다. 여기서 핵심은 분별이다. 그럼 무엇을 분별해야 한다는 것일까? 옳음과 그름? 좋음과 나쁨? 맞음과 틀림? 그렇다. 그런 것들을 헤아려 내고 옳음과 좋음과 맞음을 행해야 한다. 그게 분별이다. 그런데 정치, 그중에서도 용산과 여의도를 축으로 해 전개되는 작금의 현실 정치를 보자. 그 판에서 옳고 그름, 맞고 틀림, 그리고 좋음과 나쁨을 잘 가늠할 수 있겠는가? 유일하게 작동하는 혹은 강제되고 있는 분별은 누가 적이고 동지냐는 것이지, 옳고 그름 등이 결코 아니지 않은가? 다시 묻자. 그럼 적과 동지에 대한 분별은 과연 현명함일 수 없다는 말인가? 누군가의 말처럼 정치의 근원이 적과 동지를 구분하고 결정하는 것인데 말이다. 이런 항변은 속류적 관점의 차원에서 너무나 일반적인 것인 데다, 우리가 접하고 있는 대내외적 정치의 압도적 현실이기에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다시 또 물어야 한다. 적과 동지를 맞게 구분했냐고, 또 그것이 옳고 좋은 행동, 즉 바람직한 결과를 낳느냐고.

김윤철 경희대 교수·실천교육센터장

김윤철 경희대 교수·실천교육센터장

결론부터 말하고 넘어가자.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작금의 정치판을 온통 휩쓸고 있는 적과 동지의 구분은 저질이며,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왜냐고?

첫째, 대한민국의 자기존재 형식의 보존을 위한 결정권(주권)을 침해하는 게 아닌 타자인데도 불구하고 적대시했다. 단지 정국 운영에서의 독선과 독단과 독주를 위한 패권을 차지하려고. 또 개인의 정치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방탄복을 벗지 않으려고. 그러면서 정치적 경쟁을 투쟁 혹은 전쟁 상태로 변질시키고 있다. 둘째, 서로가 모두 민주공화제와 한 정당의 성원이며 대표라는 전제를 부정하면서, 외부에 실재하는 진짜 적에 맞서기 위한 내부의 단합된 힘을 훼손하고 스스로를 소수화하고 무능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국가공동체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재생산과 회복의 정치적 힘을 파괴하고 있다.

집권여당인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 과정을 보자. 누가 윤심을 대표하고 실현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치열하게 경쟁했다. 안철수를 비롯한 경선 후보 중 어느 누구도 반윤석열임을 자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친윤석열이냐 아니냐를 경계선으로 적과 동지를 갈랐다. 그러면서 친윤이 당권을 차지하느냐 아니냐가 정권과 당의 명운을 좌우한다고 주장했다. 경선은 친윤계 김기현의 승리로 끝났다. 당대표뿐만 아니라, 최고위원회도 친윤계가 장악했다. 안철수 후보를 비롯한 이준석계 후보 등의 경쟁자들을 적으로 몰아간 전략이 성공을 거두었다. 유의할 것은 그 전략이 결코 일시적이거나 경선 승리만을 위한 게 아니라는 데에 있다. 경선이 끝난 후 승자 측에서 나오는 말들을 들어보자. 패자들을 같은 당의 동지라고 생각하지 않음을 공언하고 있다. 친윤계로 최고위원에 오른 김재원 전 의원과 조수진 의원 등이 나서서 반윤계인 이준석 전 대표는 물론이고, 유승민 전 의원 등에 대해 여전히 공격적 언사를 구사하고 있다.

재생산과 회복의 정치적 힘 파괴

이준석 전 대표와 유승민 전 의원 등이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을 망칠 생각과 의지와 능력을 갖추고 있을까? 필자가 보기에는 아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지난 대선 이후 한층 더 적대성이 강해진 양당제 현실에서 그들이 국민의힘을 나가 현 집권세력과 친윤계를 압박할 새로운 입지를 구축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국민의힘이 아닌 누군가와 손을 잡아야 작으나마 힘을 가질 수 있는데, 그럴 개인이나 집단을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정치 밖의 새로운 대중적·사회적 지지기반을 구축해야 하는데, 그들이 선보인 그간의 정치 행태는 그것과 거리가 멀다. 설사 시도한다 해도 실효성을 거둘 수 있는 시한인 총선 전까지는 실현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기껏해야 당정에 관여할 자리와 영향력일 수밖에 없다. 친윤계로서는 어렵다 해도 수용 불가능한 요구가 결코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당내에서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한 중도층 지지 확보에 그들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다수를 점하지 못해 총선 승리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당내의 그런 전망에도 불구하고 친윤계가 ‘당정일체’를 내세워 반윤계를 스스로 나서 적으로 몰아가며 역설적으로 한층 더 실체화(세력화)해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입으로 뱉어내기도 했지만, 진짜로 제거하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그래서 김기현 대표가 ‘연포탕(연대·포용·탕평)’을 내세웠는데도 그러는 거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축출에도 힘을 쏟고 있다. 새 지도부가 출범하며 민생 개선을 우선하겠다고 했지만 이재명 대표의 경기도지사 시절의 측근 인사 죽음을 계기로 다시 열을 올리고 있다. 당 안팎에 걸쳐 적과 동지를 가르는 두 개의 전선을 동시에 치고 전쟁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두 전선에서 모두 승리를 거둘 재원과 병력이 충분한지 살펴봐야 하리라.

누군가를 적대시하면 진짜 적이 돼

민주당은 어떠한가?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부결 과정에서 내부 이탈자 등장 사태를 겪으며 비명(비이재명계)의 목소리가 ‘개딸 공세’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 때문에 오히려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 대표의 리더십하에 당을 윤석열 정권 반대 투쟁 전선으로 결집하는 데 실패하고, 오히려 당내에 친명 대 반명의 전선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해서조차 공격을 가할 정도로 격화 양상을 띠고 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서로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각기 내부적으로 행하고 있는 적과 동지의 구분에는 차이점이 있다. 국민의힘의 경우는 윤석열 정권이 드러낸 국정운영 능력의 미숙함에 대한 비판세력을 제거해 조기 레임덕을 방지하고 안보와 경제 정책의 낡은 보수 우파의 패러다임을 복원·고수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2000년대 이후의 정권들을 관통하며 정치·사회적 합의의 정도가 점차 강화되어온 다자 안보 및 균형외교 구상과 탈원전과 탄소중립 기반 산업 모색 그리고 복지 강화 경향에 대한 반동이라고 할 수 있다. 윤석열 정권이 한·미·일 동맹 강화와 원전 산업 재활성화 그리고 반노동·반복지 시장지상주의 정책을 강조하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자기들이 스스로 (레토릭과 변형적 차원에서나마) 수용했던 녹색성장과 경제민주화 그리고 대중국 외교 강화 노선 등을 담론 수준에서조차 폐기하려는 것이다. 긍·부정을 떠나 국민의힘은 그래도 윤석열 정권의 국정 노선을 (홀로) 관철시키기 위해 적과 동지를 구분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그런 낡은 패러다임의 복원이 작금의 세계 정세와 스스로 강조하고 있는 미래 중심성에 부합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여부에 대해 정치·사회적 토론을 열어 정도의 조정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투었느냐는 것이다. 답은 ‘아니요’이다. 국민의힘에서의 적과 동지의 구분이 국정노선이라는 공적 영역과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래할 위험성이 클 우려가 있는 이유다.

민주당의 경우는 세간에서 이재명 대표 개인의 사법 리스크를 무마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집권세력의 국정노선에 대한 비판의 성격이 검찰 수사와 영장 청구를 거쳐 점차 가려지며 결국 그리 귀착되고 말았다. 그것마저 친명 대 비명이라는 내부의 전선만 남길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전선을 해소해야만 당 밖에다 국정노선을 둘러싸고 전선을 칠 수 있을 터인데, 개딸을 위시로 한 친명계의 반응을 볼 때 돌아가는 양상이 녹록지 않다. 국정 개입력을 상실해 수권 야당의 위상을 스스로 좀먹으며 무의미한 존재가 되고 있다. 심지어 군소정당이지만 국정노선 비판에서 우군이 될 수도 있는 정의당마저 적으로 돌리고 있다. 누군가를 적으로 대하면 진짜 적이 된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양당이 행하고 있는 적과 동지의 구분에는 공통점이 있다. 감정적이고 성급해 관계가 달라질 여지를 삭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둔할 뿐만 아니라 반(反)정치적이기까지 하다. 견고한 성을 쌓는 것 같지만, 그것은 고립의 성임을 모르고 있다. 적과 동지의 구분에도 현명함이 필요하다는 걸 상기해야 한다. 기대난망이려나?

■김윤철

경희대 교수 및 실천교육센터장.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세계와 시민’ ‘정치의 인문학적 탐색’ 등의 과목을 가르친다. 참여사회연구소 부소장, ‘시민과 세계’ 편집위원,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 노회찬정치학교 교장 등을 역임했다. <정당> <헬조선 3년상> 등의 저서와 ‘노동존중 정치와 노회찬의 6411정신’ ‘한국 불평등 민주주의의 정치사적 기원’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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