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저출생 대책 회의

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그랬을 거다. 국민의힘 정책위원회가 저출생 대책이랍시고 검토했다는 ‘자녀 3명인 20대 남성의 병역 면제’ 안건은 단순한 의견을 넘어 초벌구이는 되었기에 외부에 알려졌을 거다. 상식적이라면 비슷한 소리가 등장하자마자 “뭐? 누가 알까 봐 부끄럽다!”라는 한탄과 함께 버려졌어야 하지만 아니었을 거다. ‘올해의 가장 수준 낮은 아이디어’가 오갔을 회의실을 상상해 본다.

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꾸려진 위원회에서는 저출생을 논하면서도 투박한 공정론을 전면에 내세웠을 거다. 그것에 심취했던 누군가가 툭 내뱉었겠지. “기존의 저출생 정책은 여성만 특혜를 얻는 식이었어!” 여자는 권리만 말하고 의무는 모른다는 말에 익숙했던 옆사람이 맞장구를 쳤겠지. “맞아. 회사에는 출산을 벼슬처럼 여기는 여자들이 많아. 뼈 빠지게 돈 버는 건 남편들인데 말이야.” 이를 논리적이라고 여겼던 건너편 아무개가 추임새를 넣겠지. “남성들이 역차별받는 정책 말고, 남자에게도 혜택을 주자고!”

그리고 군대 이야기가 생뚱맞지만 자연스레 이어졌을 거다. 진정한 성평등은 여성도 군 복무를 해야 한다는 고통의 평준화 정책이 시원하게 튀어나왔을 거다. 괴상한 기계적 평등론이 꼬이고 꼬이면서, 직업군인을 선택한 여성이 출산하면 1억원을 주자는 황당한 말이 실제로까진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목 끝에서 맴돌았겠지. 아무 말 대잔치가 나름 교통정리 된 결과가, 출산한 남자 군 면제라‘도’ 시켜주자는 발상이었을 거다. 형평성이라는 단어가 양념으로 사용되었겠지.

이 기운, 누구도 제어하지 못했을 거다. 아니, 제어할 ‘누구도’ 없었을 거다. 그나마 존재하는 대책마저 왜곡되었음이 분명하다. 육아휴직을 남성이 사용하는 게 어려운 사회의 고정관념을 따지면서 저출생의 본질에 접근하기는커녕 왜 여성‘만’ 육아휴직을 하느냐는 독특한 주장이 당당했을 거다. 이때도 역시나, ‘여자는 휴직이라도 챙겨 먹지, 남자는 일하고 와서 애까지 봐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하는 동조자가 있었을 거다. 생각은 자유다. 하지만 그 생각과 저출생 대책은 상극이다.

저출생 문제는 육아하는 사람의 고충을 줄여주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연애하고 결혼하고 출산에 이르도록 하는 흐름이 자연스러워야 가능하다. 지금껏 이를 사랑을 고차원적으로 다루면서 가정을 숭고하게 묘사하는 식으로 접근했다. 하지만 사랑이 넘치는 가정은 남편은 남자답게, 아내는 여성스럽게라는 성별 고정관념을 연료로 굴러갔다. 불평등을, 불평등이 아니라고 여기면 가족은 화목했다. 희생을, 희생이 아니라고 생각해 경력단절을 단절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로 받아들이면 다른 가족들이 무탈했다.

이게 당시에는 안정적인 출생률로 이어졌지만 지금에는 저출생의 강력한 원인이 되었다. 성차별은 존재한다는 인식이 바로 저출생 문제의 출발점인 이유다. 하지만 ‘구조적 성차별은 없으니’ 여성가족부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대통령을 도와주겠다는 위원회에서 저출생의 원인을 어찌 알겠는가. ‘나의 어머니는 평생 주부로 살면서도 불평한 적이 없는데 요즈음은 왜 그러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그 회의실에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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