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성을 강화하라

변재원 작가·소수자정책연구자

‘공공성을 강화하라!’ 지난 5월9일 광화문 거리에 모인 공공·운수·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이 외친 주된 구호 중 하나다. 우리 사회의 필수 재화의 생산을 담당하는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은 새 정부가 취임한 지 1년 지난 지금, 우리 사회의 공공성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아래에서 가장 먼저 실감한 이들이었다. 이들 노동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한 해, 윤석열 정부를 우려하는 사설의 견해는 대부분 공공성의 위기와 맞물려 왔다.

변재원 작가·소수자정책연구자

변재원 작가·소수자정책연구자

작년 상반기, “장애인과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끊임없이 외쳐온 장애인에게 정부·여당이 대화가 아닌 무관용을 경고할 때. 작년 하반기, “화물운송노동자의 노동 안전을 지켜달라”고 외치며 화물노동자의 최저임금제 같은 안전운임제를 일몰토록 할 때. 올해 상반기, “주 69시간제 도입”을 사측의 입장만 듣고 무리하게 추진하려고 할 때. 1년 내내 시민들은 언론으로 소식을 접하며 개인의 자유를 가능케 하는 국가의 공공성이 무너지는 게 아닌지 걱정에 걱정을 더했다. 미디어에서 ‘법치주의’의 용어를 강조할수록, 현장의 공공성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오늘날 법치주의 개념은 공공성을 잠식시키는 방향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참여의 가치를 부정하고 처벌의 기준만을 강조하는 이념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법치주의 이상의 실현을 가능케 하는 무관용의 원칙이 민주주의의 자유를 억압하는 논리로 활용되고 있다. 생계고로 인해, 지독한 차별과 배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거리로 나서게 된 노동자와 장애인들의 소외와 고충을 듣고, 대화의 장을 열어가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의 기본 원칙이건만, 무관용을 강조하는 정부는 공적 지위를 갖추지 못한 시민과 대화하는 것이 가당치 않은 일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수사와 기소의 역사로 이루어진 정부인 만큼, 체화된 형법의 망치가 국정 운영의 제1원칙으로 작동하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정치(politics)보다 치안(police)에 더 큰 무게가 실린 채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

독일어로 공공성은 ‘열림’을 동시에 뜻하기도 한다. 근본적으로 공공성은 늘 열린 마음과 참여의 정신과 함께하는 가치이다. 현 정부가 택한 통치 이념으로서 법치주의는 공공성의 ‘열려 있음’을 억압하는 대표적인 논리로 쓰이고 있다.

사회적 불평등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립된 시민들이 일상의 거리에서 서로 연결됨으로써, 함께 목소리를 내고 자신을 가두어왔던 구조적 부정의에 저항함으로써 민주주의 체제의 공공성이 유지될 수 있다. 모든 국민이 겪고 있는 파편의 고통들이 국가의 거리에 모일 때, 그렇게 서로 연결되고 열리게 될 때 비로소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다. 사회적 불의를 고발하기 위해, 공공 정책의 한계를 알리기 위해 거리에 나선 시민들은 법치주의의 혼란을 일으키기 위한 폭도가 아니고,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파수꾼이다.

공공성을 강화하라. 깨진 유리창을 없앤다는 법치주의의 논리로 역동성을 틀어막을 것이 아니라, 연결시키고 열리게끔 하는 민주주의를 하시라. 법치주의의 논리를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당장 시민들이 걱정하는 국가적 공공성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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