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표 서원대 교수
크라운맥주가 경향신문(1974년 5월27일자)에 게재한 ‘41년 전 크라운맥주(조선맥주) 상표를 찾습니다’라는 제목의 광고.

크라운맥주가 경향신문(1974년 5월27일자)에 게재한 ‘41년 전 크라운맥주(조선맥주) 상표를 찾습니다’라는 제목의 광고.

3년 전쯤 어느 날 저녁, 인천 개항장 거리 일대에서 근대 건축물 조사를 마치고 인천역을 향해 걷고 있었다. 아트플랫폼 골목이 거의 끝나가고 차이나타운이 눈에 들어올 즈음, 옛 창고 건물 외벽에 걸린 맥줏집 간판이 보였다. 인천맥주. 다소 촌스러운 듯한 이름이었지만, 무언가 낭만과 운치가 있어 보였다. 우리 일행은 곧바로 문을 열고 들어섰다. 맥주도 맛있었지만 실내의 창고 분위기도 매력적이었다. 맥주를 마시고 나오면서 맥주와 근대 거리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광표의 근대를 건너는 법] 맥주와 레트로

요즘 맥주판의 레트로 열풍이 심상치 않다. 그 첫 주자는 대한제분과 세븐브로이가 합작한 ‘곰표맥주’였다. 2021년 편의점 맥주 판매 1위를 기록했던 곰표맥주. 주 고객은 젊은층이었고, 곰표맥주는 대박을 터뜨렸다. 1952년 창립한 밀가루 제조회사 대한제분의 곰표 브랜드를 젊은층이 이렇게 좋아하다니. 이후 곰표맥주와 유사한 ‘콜라보’ 맥주가 줄지어 등장했다. ‘말표맥주’ ‘럭키금성맥주’ ‘BYC맥주’ ‘쥬시후레쉬맥주’ ‘스피아민트맥주’ ‘삼립식품 크림삐어’ ‘삼미슈퍼스타스맥주’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근현대기의 브랜드를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 잘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가 맥주를 통해 열심히 근대를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곰표와 세븐브로이가 헤어졌다고 한다. 앞으로 시장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

지역 이름을 내세운 맥주도 많다, 강서, 양평, 속초, 서빙고, 달서, 해운대, 평창, 소양강, 낙동강, 남해, 여수 등등. 이 또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지역명 맥주는 세련되고 감각적인 측면도 있지만, 복고적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고향사랑 기부제’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할까. 아무튼 지역 이름 맥주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최근 곳곳에서 레트로 열풍이 불고 있지만 맥주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진로 이즈백’ 소주도 있고 ‘표문(곰표)막걸리’도 있지만, 소주·막걸리의 레트로 분위기는 맥주보다 훨씬 약하다. 그렇다면 왜 맥주일까. 좀 더 정교한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맥주는 그 자체로 우리 근대사와 함께해온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나라에 맥주가 들어온 때는 1876년. 이후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맥주 소비가 늘었다. 이어 1933년 처음으로 맥주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해 일본의 ‘대일본맥주’가 ‘조선맥주’를, ‘기린맥주’가 ‘소화기린맥주’를 설립한 것이다. 조선맥주는 ‘하이트맥주’로, 소화기린맥주는 ‘동양맥주’ ‘오비맥주’로 이어졌다. 이 같은 내력은 맥주와 근대의 인연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본 삿포로 도심엔 삿포로 팩토리가 있다. 이곳은 원래 1876년 건립한 ‘삿포로맥주’의 양조공장이었다. 1993년 공장을 교외로 이전한 뒤 옛 공장을 살려 복합문화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지금은 수많은 사람이 몰리는 삿포로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삿포로 팩토리에 가면 우리의 오비맥주 공장이 떠오른다. 오비맥주 공장은 소화기린맥주 시절부터 영등포역 옆에 있었다. 영등포역 일대는 20세기 우리 맥주의 상징 공간이었다. 그런데 1997년 경기 이천으로 공장을 옮기면서 맥주공장의 흔적들을 모두 없애버렸다. 담금솥 하나만 덩그러니 남겨놓았을 뿐이다. 최근의 맥주 레트로 열풍을 목도하다 보니 더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인천맥주에 함께 들렀던 일행들을 요즘도 자주 만난다. 만날 때마다 “인천맥주 마시러 가자”고 다짐하곤 한다. 모두들 개항장 창고에서 맥주를 마시고 싶은 것이다.

지난해 말 전북 군산 원도심 째보선창의 옛 수협창고(어판장)에 군산비어포트가 문을 열었다고 한다. 군산에서 들러야 할 곳이 하나 더 생겼으니, 이래저래 우리네 맥주와 근대는 태생적으로 한 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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