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판’ 야기한 성소수자 차별 의제화해야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인천여성영화제를 진행해 온 (사)인천여성회 측은 지난 16일 인천시가 퀴어 영화를 상영작 리스트에서 제하라는 등 상영작 선정에 개입한 것에 항의하며 인천시의 보조금 지원을 거부하겠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인천시 담당자는 민원 발생 가능성이 높은 퀴어 영화를 영화제 상영작 목록에 올리지 말거나, 퀴어 영화와 ‘탈동성애 영화’를 같이 상영하는 게 어떻겠냐는 등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지난 17일 대구퀴어문화축제는 결국 진행될 수 있었지만, 대구 시장이 ‘성다수자의 권익이 중요하다’면서 퀴어문화축제 반대를 표명하고 보수단체의 퀴어문화축제 저지 시도를 지지해 왔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17일 대구에선 법원 판결에 따라 정당하게 시행되는 집회이므로 진행돼야 한다는 경찰과, 대구시의 행정대집행 명령을 근거로 이를 막으려는 공무원의 충돌이 일어났다. 서울퀴어문화축제 역시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의 권리’가 강조되면서 서울문화광장 사용이 불허되었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이처럼 지자체가 앞장서 성소수자의 가시화를 위한 문화행사를 막고 이들의 목소리를 축소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을 정당화하고자 축제를 열고 싶은 사람과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의 권리’ 간의 비교, ‘성소수자의 권익’만큼 ‘성다수자의 권익’도 중요하다거나 ‘동성애와 탈동성애를 같이 다루면 논란이 줄어들 수 있다’라는 등, 비틀어진 차별 논리를 가져온다. 사회 역사적 맥락이나, 구조적 차별의 문제에 대한 몰이해 혹은 무시를 바탕으로, A와 B가 과연 동일 선상에서 논의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찰도 없이 그저 이를 동등하게 다루지 않으면 차별이라는 논리로 성소수자의 권리 실행을 어렵게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사회적 차별에 대한 것이다. 두 가지를 동등하게 다루지 않아서 문제인 것이 아니라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며 그 과정에서 어떤 이익 형량이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퀴어문화축제에 대한 이제까지의 언론 보도는 축제 의미를 다루거나 우리 사회의 차별적 인식 개선에 대해 논의하기보다는 이를 논란으로만 표상하는 경향이 있었다. 올해는 언론의 주요한 취재원이라고 할 수 있는 공적 기관들이 갈등을 주도하면서 관련 보도가 더욱 갈등과 대결 중심으로 틀지어지는 양상이다. 지난 17일 대구퀴어문화축제 보도들은 ‘난장판’ 등의 은유적 표현을 사용하면서 경찰과 공무원의 대립을 강조했다. 최근 뉴스 읽기는 탈맥락화돼 제목을 중심으로 소비되는 경향이 강한데, 대구퀴어문화축제 관련 보도를 제목으로만 보게 된다면 대중들은 이 축제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갈등적 사건으로 피하고 싶은 이슈로만 생각하게 될 수도 있다.

유네스코는 2021년 온라인 공간의 젠더 기반 폭력 문제를 다루면서 ‘위축(The Chilling)’이라는 개념을 내세웠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규제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사회 전체에서 표현의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는 맥락에서 오래전부터 사용되어 온 개념이다. 지자체가 앞장서 성소수자의 발화와 행위를 제한하는 것은 사회적 차별 행위임은 물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을 가져오는 것이다. 유네스코 보고서는 한발 더 나아가, 젠더 기반 폭력 행위를 문제로 인식하여 이에 대해 대응하지 않는다면 결국 해당 공간에 소수자의 참여가 줄어드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혐오에 대응하지 않는 것이 민주주의에 대한 해악이 됨을 강조한다. 현재의 ‘난장판’ 그리고 사회적 ‘갈등’은 혐오와 차별에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민주주의에 대한 해악이다. 그러니 언론 보도는 성소수자의 목소리와 활동에 대해 기술하는 것은 물론, 이러한 난장판을 야기한 차별의 문제를 의제화해야 한다. 앞으로도 계속될 퀴어문화축제 및 성소수자 관련 보도의 틀짓기 방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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