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탓’으로 현상유지하는 정치

김민하 정치평론가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를 놓고 서로를 탓하는 정치권의 모습은 볼썽사납다. 파행의 책임을 제대로 짚고 싶다면 길 잃은 새만금 사업 정당화를 위해 잼버리가 동원된 얘기부터 해야 한다. 새만금 사업은 대체 왜 시작했으며, 갯벌과 거기에 사는 생명과 그 덕에 먹고사는 어민을 희생한 대가는 무엇인지를 돌아봐야 한다. 이러한 본질에는 무관심하면서 서로를 때리는 데만 혈안이 된 여의도 정치가 다른 문제인들 제대로 해결할 수 있겠는가.

김민하 정치평론가

김민하 정치평론가

“남 탓하지 말라”고 하면 남 탓 책임을 놓고 또 서로 탓하는 게 지금의 여의도 정치다. 이번 사태의 ‘남 탓 책임’은 정권과 여당에 있다. 대통령실이 잼버리 파행에 대해 “전 정부에서 5년 동안 준비한 것”이라고 한 게 이번 남 탓 경쟁의 시발점이 됐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아파트 시공에 철근이 누락된 것마저 “우리 정부 출범 전에 이뤄진 것”이라고 했고, 여당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부 정책의 심각한 결함”을 언급했는데, 끈질긴 분들이다.

이런 ‘전 정권 탓 남발’이 과연 정치적으로 무슨 도움이 될까? 결집의 소재는 될 수 있어도 확장에는 걸림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대다수의 평가다. 정권 초 대통령이 인사 문제에 대해 전 정권 탓을 한 게 지지율 하락의 원인이 된 실증적 사례도 있다.

주목할 것은 대통령 지지율의 ‘회복탄력성’이다. 앞의 사례처럼 과도한 남 탓이나 ‘바이든/날리면’ 논란처럼 도저히 방어할 수 없는 일의 중심에 대통령이 있을 때 전화면접조사 기준으로 30% 또는 그 아래까지 지지율 하락이 일어난다. 그런데 대통령이 노조 강경 대응이든 3대 개혁이든 뭔가를 하겠다고 힘주어 말하면 지지율은 30% 중반 수준까지 다시 회복된다. 자동응답시스템(ARS)조사도 수치는 다르지만 흐름은 마찬가지다. 이 덕에 대통령은 ‘전 정권 탓’을 계속할 수 있다.

악순환을 깨기 위해선 ‘회복탄력성’의 동력을 먼저 봐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의 약 48%가 윤 대통령에게 투표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실망해 이탈했지만 미련까지 거둔 것은 아니다. 대선 당시 던진 한 표를 지금 매몰비용으로 처리하기에는 어려운 것이다.

시간이 가면 미련도 희미해지겠지만 총선 전에는 어렵다. 0.73%포인트로 승부가 갈린 지난 대선 구도가 총선까지 이어진다고 전제하면 야당의 승리를 위해선 윤 대통령에게 투표한 유권자 중 당시 자기 선택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는, 즉 ‘그때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했어야 했다’고 생각하는 유권자가 많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당 스스로가 모범적이고 매력적인 정치세력으로 변화하는 일이 필요하다. ‘남 탓’을 벗어나는 건 물론이다.

김은경 민주당 혁신위는 이런 변화를 추동해야 할 주체였다. 그러나 ‘여명 비례 투표’ 등 황당한 논란 끝에 정치적 동력을 잃었다. 혁신위원장이 연이어 사고를 쳤다면 혁신위원들이라도 잘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대변인들은 “사과할 일 아니다”라고 했고 한 혁신위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여당의 비판에 대해 “남의 당 일에 참 관심이 많다”고 했다. 이들은 대부분 정치권 밖에서 온 인사들이다. 밖에 있을 때는 정치권이 한심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에 들어와선 사과는 아끼고 남 탓으로 반격하는 기성 정치권의 모습을 답습했다. 혁신위원 개개인은 훌륭한 사람들인데도 이렇게 됐다는 건 여의도 정치의 한심한 꼴이 개인이 아닌 구조의 문제라는 걸 시사한다.

이 구조가 총선을 계기로 바뀔까? 아닐 것 같다. 제3지대는 이미 번잡해졌으니 남 탓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49 대 49의 사실상 무승부가 유력하다. 양당 내 주류와 비주류는 이게 실질적 승리인지 패배인지를 놓고 계속 다툴 것이다. 유권자들에겐 끝나지 않는 고통이다. 물론 정치는 풍수나 관상이 아니기에 노력 여하에 따라 미래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제발 그런 노력을 보여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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