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富)와 성장의 미래

아직 몇 가지 불안요인들이 남아 있지만, 지난 1년 반에 걸쳐 빠르게 진행돼왔던 전 세계적인 통화긴축이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에 글로벌 경제의 향방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최근 맥킨지 글로벌연구소(MGI)는 거시경제와 글로벌 대차대조표의 변화를 중심으로 미래 시나리오를 제시한 보고서를 내놨다. MGI 보고서를 토대로 앞으로 펼쳐질 경제상황을 조망해보자.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

주지하듯이 2000년을 전후해 세계 경제의 순자산 증가와 (경제주체별) 대차대조표의 확장 속도는 국내총생산(GDP)의 증가 속도를 빠르게 추월하기 시작했다. 그 원인은 주로 주식과 부동산 같은 자산가격의 상승 때문이었다. 2000~2021년 자산가격 인플레이션은 전 세계적으로 160조달러 규모의 ‘장부상 부(paper wealth)’ 또는 ‘부(富)의 착각(wealth illusion)’을 만들어냈다. 게다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이러한 대차대조표의 확장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반면 같은 기간에 생산적 투자는 크게 감소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전 GDP 대비 순고정투자 비중은 6~8%대였으나 2010년대에는 3~4%대로 절반가량 감소했으며, 지금까지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

MGI가 제시한 4가지 미래 시나리오에 대해 살펴보자. 첫째, 이전 시기(2000~2020년)로의 회귀 시나리오다. 이는 낮은 물가상승률, 상대적으로 높은 실업률, 저조한 총수요와 저성장으로 대표되는 만성적 침체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GDP 대비 기업수익은 성장하지만 생산적 투자보다는 평가가치에 기인한다. 실질이자율은 여전히 낮고, 생산성 성장은 낮은 수준에 머문다. 대차대조표는 지속적으로 확장되나 자산가격 인플레이션에 기반한 것으로 금리 상승과 과중한 부채로 인한 충격에 취약하다.

둘째, 장기 고물가 시나리오다. 1970년대 미국의 스태그플레이션과 유사하다. 하지만 당시보다 한참 낮은 4%대의 물가상승이 구조적으로 지속되는 시나리오이다. 견고한 소득 성장, 부의 증대, 대차대조표의 안정성 증대를 특징으로 한다. 타이트한 노동 공급으로 명목임금은 상승하고, ‘넷 제로(net zero)’ 이행, 공급망 재편, 안보비용 확대 등 관련 투자가 증가한다. 기준금리는 금융불안에 대한 우려로 인해 인플레이션 목표를 달성하는 수준까지 상승하기 어렵다. 강한 수요와 높은 수준의 투자가 추세선 이상의 GDP 성장을 견인한다. 대차대조표는 역사적 평균으로 회귀하고, 주식의 시장가치와 부동산 가격은 하락과 동시에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가계의 실질 부는 감소한다.

셋째, 대차대조표 리셋 시나리오다. 일본의 1990년대와 유사하게 장기침체로 인한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강력한 재정 및 통화긴축으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데 성공하지만 실질금리는 상승하고 부채 부담이 증가하며 자산가격은 하락한다. 유동성 경색 위험이 증가하고, 장기침체에 돌입하면서 부채조정(디레버리징)시대가 도래한다. 주식 가치와 부동산 가격은 하락하고 리스크 프리미엄은 상승하며, 부득이하게 공공부채는 증가한다.

넷째, 생산성 향상 시나리오이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 경험했던 ‘골디락스(Goldilocks)시대’가 도래한다는 시나리오다. 타이트한 노동시장에 대응한 기업의 투자, 특히 디지털·자동화 기술에 대한 투자가 증가하고, 새롭게 재편된 공급망이 효율적이다. 또한 신흥 경제권으로부터의 노동공급이 증가하거나 혁신과 기술에 대한 산업정책이 추진되면 공급 증대로 인해 물가상승 압력은 감소한다. 실질금리는 상승하고 생산적 자본배분이 확대된다. GDP 성장 덕분에 대차대조표는 소폭 축소된다. 주식의 시장가치는 완만하게 상승하며, 부동산 가격은 정체되고, 금리상승에도 불구하고 늘어난 투자 덕분에 채권가치는 상승한다. 가계의 실질 부는 증가한다.

이런 시나리오 중에서 어떤 게 가장 가능성이 높은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어떤 게 바람직한지는 분명하다. 시장경제의 역사가 보여주듯 경제성장과 괴리된 대차대조표의 확장은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생산성 증가의 가속화만이 장기적인 소득 및 부의 성장과 ‘건강한’ 대차대조표를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교과서적이긴 하지만 자명한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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