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과 요시다 쇼인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지난 주말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 <스물두번째 편지>를 봤다. 김대건이 프랑스인 신부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통해 그의 삶과 시대를 조명한 작품이었다. 내 머릿속에 김대건의 존재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올해 3월 서울대 역사학부 답사로 그의 생가가 있는 충남 내포 솔뫼 성지에 갔을 때였다. 이곳은 바닷물이 내륙 깊숙이 들어와 내지에 포구를 형성하고 있어 서울은 물론 중국과도 왕래가 쉬웠다. 이 때문에 일찍부터 천주교가 번성했는데, 김대건 가문은 증조부, 종조부, 부친, 그리고 본인까지 4대가 순교했다.

1836년 프랑스 선교사 피에르 모방은 김대건·최양업·최방제 등 3명의 조선 소년들을 유학생으로 선발했다. 이들은 중국을 거쳐 마카오로 가 신학, 라틴어, 프랑스어, 서양철학 등을 배우다가 마카오 정세가 심상치 않자 마닐라로 건너갔다. 이 와중에 최방제는 병사했고, 조선에서는 김대건의 아버지 김제준과 모방 신부가 순교했다(기해박해). 같은 시기 철저한 쇄국정책을 펴고 있던 일본은 표류민을 제외하고는 단 한 명의 외국행도 허락하지 않았다. 당시 일본 지식인들이 난학책으로만 서양지식을 쌓으며 답답해하던 때, 김대건은 중국어, 라틴어, 프랑스어를 구사하며 중국으로, 동남아시아로 세계 각국 사람들을 만나며 돌아다녔다. 일본인들이 그리도 궁금해하던 난징조약 조인 현장에도 입회했다. ‘오대주를 주유(周遊)’하고 싶다던 요시다 쇼인(<투이서·投夷書>)의 꿈을 김대건은 벌써 이루고 있었다.

1844년 유학을 마치고 천신만고 끝에 육로로 조선에 들어왔다. 그러나 상하이의 페레올 신부가 조선 주교로 임명되자 그를 모시러 조그마한 배를 구입해 서해에 뛰어들었다. 11명의 교우와 함께였는데, 그중 7명은 바다 구경조차 처음 하는 사람들이었다. 배가 얼마나 작았던지 그걸 본 프랑스 선원은 ‘한 짝의 나막신’이라고 했다. 그래도 배 이름만은 수호천사 ‘라파엘호’로 지었다(김성태 <나는 씨앗입니다-첫 번째 사제, 김대건 신부를 그리며 쓰다>).

김대건이 일엽편주 라파엘호를 타고 서해 바다에 뛰어드는 장면에서 묘하게도 요시다 쇼인이 떠올랐다. 요시다 쇼인은 1830년생이니 김대건보다 아홉 살 아래다. 1854년 미국 페리가 일본에 들이닥치자 그는 작은 배에 의지해 바다에 뛰어들어 페리함대에 다가갔다. “당신은 누구요?” “책을 읽는 사람이오.” “미국에 가서 뭘 하려고 그러시오?” “학문을 하고 싶소.” 그의 ‘학문’은 무얼 위한 것이었을까. 아마도 일본의 부국강병이었을 것이다. 막부를 의식한 페리는 그의 청을 거절했다.

상하이에서 주교 페레올을 태우고 김대건은 조선을 향해 또다시 라파엘을 띄웠다. 그러나 기진맥진해 도착한 곳은 제물포도 내포도 아니고, 제주도였다. 교우들의 연줄을 타고 서울까지 들어왔다. 위험하고 힘들기는 하지만 역시 뱃길이 육로보단 나았다. 중국에 있는 선교사들과의 왕래를 위해 서해 항로를 뚫어 놔야 했다. 내포 출신 김대건다운 발상이다. 하지만 서해안을 탐색하다 1846년 6월 황해도 섬 순위도에서 체포됐다. 귀국해 사제로 활동한 지 겨우 8개월 만이었다. 형장에서 교우들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에서 김대건은 “부디 서러워말고 큰 사랑을 이루어, 한 몸같이 주님을 섬기다가 사후에 한 가지로 영원히 천주대전에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 천만 바란다. 잘 있거라”고 했다(<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서한>). 1859년 막부에 체포된 요시다 쇼인은 “몸은 비록 무사시 벌판에 썩어가더라도 남겨놓은 것은 야마토 다마시이(일본혼)”라고 남겼다. 둘 다 참수, 각각 25세, 29세였다.

부국강병, 민족주의와는 인연이 먼 김대건의 활동과 유언은 시대착오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대착오적 열정’이 시대적 요청에 응답하는 경우도 있다. 그 후 전개된 한국 근대사에서 천주교·기독교가 행한, 바꿀 수 없는 역할을 생각하면 이 점 또렷해진다.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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