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떡볶이 파는 평범한 동네 노점이랄까, 시장 좌판 가게가 점점 줄어든다. 입맛이 바뀐 것인지, 먹을 게 많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오랫동안 불후의 일등 간식이 왕좌를 내놓는 것 같아 슬프다. 불후라고 썼지만, 이건 어폐다. 영원해야 불후인데, 영원하지 않을 예감이니까. 얼마 전 한 초등학교에 갈 일이 있었는데 아이들에게 제일 즐기는 간식을 물어보았다. 첫째가 마라탕, 둘째가 탕후루였다. 한때의 인기 정도로 생각했던 마라탕은 자리를 굳힌 느낌이다. 떡볶이를 밀어냈다. 매운 음식은 중독이 되고, 스트레스를 풀어주는데 마라탕이 이제 그들 말대로 ‘원톱’이다.

“엄마랑 같이 갈 때나 떡볶이 먹어요. 우리끼리 갈 때는 마라탕이죠.” 학생의 대답이었다. 그렇다. 떡볶이는 중년의 간식이 되었다. 국떡(초등학교 앞 떡볶이)은 지난 세대의 추억의 음식이 되고 있는 중이다. 실제 주 고객도 그들이라 한다.

떡볶이와 함께 투톱을 이루었던 순대도 달라지고 있다. 한 청년사업가를 알고 있다. 순대 전문가다. 맛보라고 시제품을 보내왔다. 깜짝 놀랐다. 맛이 아주 좋았는데, 좀 다른 구성이었다. 이른바 고기순대였다. 보통 순대는 당면에 돼지 피, 각종 양념을 넣는다. 그 청년의 순대는 고기를 듬뿍 넣었다. 새로운 시대의 순대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원래의 순대 자리로 돌아간 것일 수도 있다.

당면이 출현하기 전까지, 순대는 꽤 비싼 음식이었고 고기를 넣는 경우가 많았다. 옛날 한식 자료를 찾아보면 순대는 귀한 존재였다. 재료가 되는 돼지고기가 결코 만만한 고기가 아니었다. 명문가 잔치에 순대가 올라가기도 했다. 임금의 상에도 바쳤다고 한다. 고기와 양념을 다져넣고 쪄서 만들어야 하니 손이 많이 가고 재료도 조달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순대는 창자가 그릇 몫을 하는 특이한 음식이다. ‘부스러기여서 쓰기 애매한’ 여러 고기와 부속들, 양념을 붙들어서 채우는 역할을 창자가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만든 순대는 주로 쪄서 먹었고, 국에 들어가거나 구이로도 먹었다.

귀했던 순대는 몇 가지 시대적인 외부 충격에 의해 대중음식이 되었다. 먼저 돼지사육의 큰 증가다. 식용유를 만들고 난 콩깻묵과 수입 사료의 폭증으로 돼지 사육이 쉬워졌다. 생산 비용도 떨어졌다. 잔치에나 잡던 돼지가 시장에 대량 공급되기 시작했다. 당연히 부산물로 만드는 순대가 흔해졌다. 또 한 가지. 속재료로 당면을 넣게 되면서 분식집에서도 먹을 수 있을 만큼 흔한 음식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값싼 임금과 당면으로 순대값을 지탱해왔다. 최근 순댓국값이 서울의 경우 9000원, 1만원에 달한다. 돼지머리, 채소 등 다른 재료와 함께 순대 가격도 올랐기 때문이다. 순대는 자동화가 아직 어렵다. 창자를 풀어서 일일이 기계에 끼우는 작업 등 사람 손이 많이 필요하다. 속칭 인건비가 많이 들어가는 분야다.

고기는 비싸서 못 먹고 그나마 기름진 음식이라고 순대를 열심히 먹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고기보다 더 비싼 순대도 많다. 사람 손이 귀하고 비싸다는 걸 우리는 순대 한 접시에서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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