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경성도수장에서 도살되어 부민이 먹은 고기는 소가 2466두, 도야지 1393두, 양이 1두….”

1935년 2월의 신문 기사다. 도수장은 도축장이다. 부민이란 서울시민이다. 소가 돼지보다 많은 게 눈에 띈다. 양이 한 마리 포함되었다. 도축량을 알리는 당시 신문 기사에는 양이 몇마리나마 빠지지 않고 있었다. 아마도 서울의 외국공관이나 호텔에 공급하는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인은 오랫동안 양고기를 더러 먹었다. 그러다 점차 안 먹는 육종이 되었다. 1978년 경향신문 기사에는 “별미 양고기”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당시 고기 공급 부족으로 파동이 일어났는데 양고기도 맛있으니 먹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다.

양은 보통 고기보다는 옷감을 얻으려고 길렀다. 모직물이 고급 섬유로 한국에도 전해졌기 때문이다. 옷감도 얻고 고기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양고기는 점차 한국인의 기호에서 사라졌다. 양과 비슷한 염소, 특히 흑염소가 육용종으로 널리 보급되었다. 기르기 쉽고 강인하며 보신용으로 적합해서 인기가 높았다.

양고기는 고급 육종으로 한국인에게 다시 돌아온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였다. 참가국 중에 양고기를 즐겨 먹는 국가가 많은데, 그들에게 공급할 음식으로 준비해야 했다. 호주 등지에서 대량으로 양고기가 수입되었다. 이후 조금씩 한국인도 맛보게 되었고, 양고기는 고급 미식의 세계에 진입한다. 고급 호텔에서 양고기 스테이크를 팔면서 이른바 유행 선도층의 각별한 음식이 되었다.

양고기는 부위가 다양한데 한국인은 특히 갈비 부위를 좋아한다. 소도 돼지도 갈비를 최고로 치니 양고기도 마찬가지였다. 2000년대 서울의 미식 구역이라는 청담동에서는 ‘랩찹’, 즉 양갈비 스테이크가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 호주와 뉴질랜드산이 수입되었다. 안심 스테이크와 함께 고급 레스토랑 번성기의 쌍두마차가 바로 양갈비였다. 양갈비에 잘 어울린다는 보르도 메도크 지방 와인이 대량 수입되기도 했다. 양갈비에 보르도 와인. 미식은 서양식을 의미했고, 허세에 가까운 미식 열풍이 불던 청담동의 2000년대 풍경화였다. 그즈음 양고기의 ‘하위 미식’도 도입되어 퍼져나갔다. 가리봉동, 이른바 동포거리에 ‘양뀀집’이 자리 잡았다. 이후의 대유행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다.

요즘은 인터넷에서도 양갈비를 판다. 프렌치랙이라고 하는 대표적인 고급 부위는 물론이고 뼈가 붙은 건 다 갈비가 되니, 어깨갈비, 배갈비라는 부위도 갈비의 일종으로 인기가 높다. 요즘 세대는 양갈비를 택배로 받아서 집에서도 구워 먹고, 시중의 여러 양고기 전문점에도 들른다. 일본식 구이집도 많고 아예 삼겹살처럼 불판 놓고 구워서 쌈장 발라 먹는 순한국식 구이집도 등장했다. 서울 식당가에 요즘 일부 양고기 공급이 중단되었다. 호주 공항이 사이버테러로 화물 적재가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식당가가 난리 났다. 생각해보니 우리도 양세권이랄까, 즉 양고기 소비국가에 들어가는 듯하다. 흥미로운 세상이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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