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카터가 가리킨 길

김현우 탈성장과 대안 연구소 소장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로절린이 9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고 한다. 카터도 위중한 상태라지만 지금 99세로 미국에서 가장 오래 살고 있는 전직 대통령이다. 한국인들에게는 주로 박정희 전 대통령과 갈등한 일화와 퇴임 후 중동 평화와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해 노력한 모습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는 정치 경험이 부족했고 인기도 없어서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으로 기록된다. 정치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엇갈리기 마련이지만, 그의 면모 중 잊혀서는 안 될 것들이 있다. 무엇보다 그의 에너지 정책과 관점이 그것이다.

2차 세계대전 직후 해병 장교로 복무했던 그는 1952년 캐나다 초크리버 원자력연구소의 노심 파손 대응에 참여했고 원전과 핵잠수함 운영 교육을 받게 된다. 이 경험들은 그가 핵에너지에 대한 견해를 형성하게 했고 중성자탄 개발을 중단하고 원전 이용에 신중한 태도를 갖도록 만들었다. 마침 임기 중인 1979년 펜실베이니아에서 스리마일 원전 사고가 일어나자 즉시 현장을 방문한 카터는 미국에서 더 이상 신규 원전을 짓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카터는 1977년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에너지 수요 관리와 재생에너지 확대를 골자로 하는 장기적 시야의 에너지 정책에 가장 큰 공을 쏟았다. 중동의 석유 위기와 스태그플레이션 속에서 미국이 무한정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는 양 살 수는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그는 태양에너지연구소를 설립하고 1985년까지 미국의 250만가구에 태양에너지를 보급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1979년 6월 백악관 웨스트윙 지붕에 설치된 32개의 태양열 온수 패널은 그의 에너지 정책의 상징과도 같았다. 조지아의 땅콩 농부였던 그는 백악관 마당에 작은 허브 정원도 만들었다.

그가 대통령 집무를 시작한 지 불과 2주 뒤인 1977년 2월2일에 한 화상 연설은 지금도 회자되는 장면이다. 추운 겨울날 두툼한 카디건을 걸친 카터는 미국의 에너지 상황을 솔직하게 설명하며, 자신이 큰 정책 변화를 시작할 것이지만 미국 시민들도 작은 희생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처한 정치적 환경은 엄혹하기 그지없었다. 물가와 실업률 상승의 악순환이 계속되었고 이란 인질 위기,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 국제 정세도 정신을 차리기 어려운 일의 연속이었다. 경제와 정치 모두 다른 대통령이라고 낫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미국인들은 1980년 대선 캠페인에서 로널드 레이건의 호언장담에 압도적 표를 던졌고 카터는 대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과학기술과 자유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레이건은 화석연료 산업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며 백악관의 태양열 패널을 철거했고 재생에너지 프로그램 지원을 삭감했다.

44년 전, 카터가 제시했던 방향으로 미국과 세계가 나아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기후변화도 이렇게 심각하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는 더 다양하고 저렴하고 민주적인 에너지원을 이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는 아마도 미국 역사상 가장 진지하고 정직한 대통령이었을 것이다. 28번째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를 코앞에 둔 지금, 카터가 가리켰던 길을 다시 생각한다.

김현우 탈성장과 대안 연구소 소장

김현우 탈성장과 대안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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