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언젠가 약간) 보전하기

신재은 풀씨행동연구소 캠페이너

“이제는 생물다양성 부문 ESG를 대응할 때, 약간의 기부나 사진 찍는 행사 수준으로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한 기업의 ESG 담당자가 제5차 국가 생물다양성 전략 공청회에 패널로 참여해서 강조한 대목이다. 이 담당자는 기업 활동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자연자본의 손실에 대해서 구체적인 영향을 측정하고, 영향을 회피하고, 최소화하고, 복원하여 영향을 상쇄하기 위한 방안을 공시해야 한다며, 정량화된 공신력 있는 제도의 시급함을 토로했다. 기업이 이른바 ‘자연자원총량제’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ESG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들의 요구가 구체적으로 변화되면서 자연자본에 대한 재무정보를 공시하는 제도(TNFD)가 급물살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해 12월 채택된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쿤밍-몬트리올 프레임워크’)의 핵심 방향을 잘 보여준다. 쿤밍-몬트리올 프레임워크는 ‘자연을 보호하자’는 모호한 수준의 좋은 말잔치를 넘어서 구체적인 목표와 방법론을 제시하고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연을 위한 파리협약’이라고 불린다. 각 국가는 이를 이행할 국가 생물다양성 전략 목표를 2024년 당사국총회 전에 수립해야 한다.

하지만 공청회에 발표된 국가 생물다양성 전략에는 구체적인 목표와 정책 수단이 모두 실종되었다. 2030년까지 ‘육상과 해양의 30%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핵심 목표는 명시되었지만, ‘훼손지역의 30%를 효과적으로 복원’하는 목표는 ‘우선 복원지역의 30%의 복원에 착수’하는 계획으로 대폭 후퇴했다. 그 외에 생물다양성 보전 부문에서 중요하게 제시된 비료와 살충제, 음식물 쓰레기의 50% 감소는 아예 수치 목표가 사라졌다.

또한 국가 생물다양성 전략에서는 생물다양성 붕괴에 가장 취약한 사회 주체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하도록 보장하는 부분도 흐릿해졌다. 쿤밍-몬트리올 프레임워크에서는 여성과 소녀, 어린이, 청소년, 장애인 등에 대한 완전하고, 포용적이고, 효과적이며 성평등한 대표성과 참여를 보장하고 환경인권운동가의 완전한 보호를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기업의 생물다양성 부문 공시 목표 역시 대기업과 다국적 기업, 금융기관의 운영 및 가치 사슬을 강조한 부분이 국내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이미 유럽연합이 2030 생물다양성 전략을 통해서 무역장벽을 예고하고 나선 상황에서 쿤밍-몬트리올 프레임워크에서 대기업 등을 특정하고 나선 것은 오히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시간을 벌 수 있는 명분이 될 수도 있지만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고 대책을 수립하기보다 뭉뚱그리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최소한의 목표도 없이 ‘자연을 (언젠가 약간) 보전한다’는 마음가짐으로는 지금의 생물다양성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 최소한의 목표조차 없다면 그저 좋은 말잔치 수준이 되어버린다. 현 생물다양성의 상황이 지구적 위기라는 과학자들의 경고와 달리 한국사회의 위기감은 높지 못하다. 투자자들의 요구가 높아지며 기업들이 먼저 몸이 단 것 같은 모양새가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정도다. 다음달 국무회의에서 제5차 국가생물다양성 전략이 최종 의결된다. 공청회의 우려가 국무회의까지 닿을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신재은 풀씨행동연구소 캠페이너

신재은 풀씨행동연구소 캠페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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