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숲, 석유 왕국이 꿈꾸는 미래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 도시숲, 석유 왕국이 꿈꾸는 미래

아직은 초기 단계지만
한국 도시숲 실측자료는
도시숲의 미세먼지
저감 미스터리를 푸는
새 역사 써내려가고 있다
아울러 우리의 자료는
사우디아라비아처럼
도시숲 가꾸려는 국가에
반드시 필요한
정보가 될 것이다

어제의 경쟁자였지만
그들이 꿈꾸는 미래 위해
한국의 경험과 지식을
나누어 준다면
어쩌면 내일은 그들이
최고의 동지가 될 것이다

지난해 11월 아랍에미리트연합 두바이에서 열리고 있는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 참석하기 위해 난생처음 중동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뜨거운 사막 위에 세워진 황금의 도시 두바이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지구의 랜드마크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하늘을 뚫을 것처럼 솟아 있는 거대한 구조물들을 보고 있으니 인간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12월임에도 불구하고 살을 태울 것만 같은 뜨거운 햇빛, 지독하게 메마른 공기, 눈을 찌르는 거센 모래바람 등 극한의 환경을 처음 경험한 나로서는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기후변화를 유발한 화석연료를 팔아 세워진 도시라는 껄끄러운 상황이지만 어쩌면 이 도시는 인간에게 한계는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기도 했다.

두바이에서 열렸던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는 인류 최대의 난제인 기후변화 문제를 풀기 위해 지금 당장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무얼 해야 하는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국제사회가 어떤 일을 함께해야 하는지, 심각한 피해를 입은 국가를 지원하기 위해 어떻게 기금을 마련할 것인지, 미래세대를 위해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지, 지금 당장 기후변화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기술은 무엇인지, 기후테크와 같이 탄소중립 시대에 어울리는 신산업 육성을 위해 국제사회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등 기후변화와 탄소중립을 위한 다양한 논의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국가 간의 첨예한 논의가 필요한 회의 외에도 참여국들은 각 국가별로 특별관을 운영하며 마치 학예회라도 하듯이 각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기후변화 관련 정책, 기술, 과학, 문화, 교육 등을 소개하고 있었다.

여러 특별관을 돌아보던 중 멀리서도 한눈에 보이는 거대한 녹색건물을 발견하여 발길을 옮겼다. 그곳은 우리와 엑스포 경쟁을 벌였던 사우디아라비아관이었다. 내가 아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이곳 아랍에미리트연합처럼 초록과는 아주 거리가 먼, 풀 한 포기 없는 사막이 떠오르는 국가이기에 많은 나무로 둘러싸인 거대한 녹색구조물은 다소 의외였다. 중동국가의 특별관이라고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기에 몹시 놀랐다. 그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한 번 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뜨거운 태양과 모래바람의 국가 사우디아라비아는 그들의 미래를 석유가 아닌 숲을 통해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COP28 행사장에 드러낸 그들의 미래 그 어디에도 검은 진주, 석유는 보이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 특별관의 입구에서 출구까지 건물 안 모든 곳의 전시물에는 숲이 담겨 있었다. 그들이 꿈꾸는 미래도시는 모래 위의 거대한 구조물이 아닌 여러 친환경 에너지를 이용하여 바닷물을 담수로 바꾸고 다시 그 물을 이용해 사막에 숲을 조성하고 그 위에 인간의 정주공간인 도시를 세우는 혁신 그 자체였다. 이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 규모의 태양광 발전단지의 위용은 전 세계인의 눈을 사로잡을 만큼 충분히 압도적이었다. 어쩌면 국토의 대부분이 숲으로 덮여 있어 그 중요함을 인지하지 못할 수 있는 우리와 달리 그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지금 갖지 못한 숲에서 찾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부족한 것을 더 가지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당연한 욕심일 것이기에 그들이 숲에 집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는 너무 많이 가지고 있기에 아쉬움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숲을 통해 미래를 보려는 사우디

사실 인간의 정주공간에 함께 공존하는 도시숲은 우리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숲을 통해 미래를 보려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도시숲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제거하고, 땅속에 물을 저장하거나 메마른 대기로 수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증산(물의 증발)을 통해 지면을 데울 에너지를 빼앗아 온도를 낮추기도 하며, 대기 중 오염물질인 미세먼지를 제거하여 공기를 맑게 하기도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도시숲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기능 중 미세먼지 저감에 관한 것이다. 이론적으로 숲은 나무가 광합성을 하는 동안 기공을 통해 잎 내부로 미세먼지를 흡수하거나, 나무의 줄기 및 가지 등의 미세한 나노구조(거미줄 같은)에 의해 미세먼지가 흡착되거나, 숲의 수관층(꼭대기)에 미세먼지가 도달하여 이동 속도가 느려지거나 면적이 줄어 차단되는 효과를 보이거나, 이동하는 미세먼지가 숲의 미기상학적 특성으로 인해 숲의 내부로 침강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숲의 미세먼지 저감 기능은 아직 현장에서 검증된 살아 있는 지식이기보다 교과서에 담긴 이론에 가까워 많은 검증이 필요한 실정이다.

몇년 전부터 한국에서는 그동안 이론에 그쳤던 도시숲의 미세먼지 저감에 대한 연구를 위해 숲속 공기 중 미세먼지를 직접 측정하기 시작하였다. 2023년 현재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운영하는 산림미세먼지 측정넷은 전국 산림 및 도시숲에 총 44곳, 132개 지점이 설치되어 있다. 측정넷 미세먼지 관측장비는 주로 산업단지로부터의 오염물질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도시 내 차단숲, 생활권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도시 내 공원녹지, 자연 휴양림과 같은 청정 숲 내에 설치되어 있으며, 미세먼지 농도를 실시간 측정 및 분석하여 10분 단위로 농도를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시화산업단지 인근에 오염물질 차단을 목적으로 폭 200m, 길이 4㎞의 띠녹지로 조성된 곰솔누리숲에 위치한 측정지점에서는 산업단지에서 주거 지역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불 때 입경에 관계없이 차단 숲 내에서 미세먼지 농도가 최대 10%까지 감소하였다. 특히 1년 중 미세먼지가 가장 높아지는 3월을 대상으로 대기오염모델을 통한 실험을 수행하였을 때, 숲 내 풍속이 증가하여 주변 지역의 미세먼지와 오염물질을 더욱 확산시켜 농도를 낮추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동일하게 산업단지와 주거 지역 사이에 띠 녹지로 조성된 도시숲이 위치한 다른 지점의 경우 농도 저감 효과가 크지 않았다. 이 지역은 차단숲의 폭이 너무 작아 산단 대비 숲 내에서 미세먼지 농도가 유의하게 감소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도심지 내 미세먼지 차단 숲의 조림 시 주풍향뿐만 아니라 숲의 규모 또한 고려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우리 자료 국제사회서 중요한 역할

도시 내 공원 녹지의 경우 양재시민의 숲 지점이 대표적인데, 도로변에서 숲 중심으로 갈수록 미세먼지 농도가 입경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5~10%가량 대기 중 농도가 낮아진다. 즉 미세먼지가 심한 날 숲 내부로 들어갈수록 외부의 미세먼지 영향을 덜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측정지점을 고려해보면, 측정넷이 설치된 도시 내의 도심 지역과 숲 지역을 비교하였을 때 전반적으로 도심 지역 대비 숲 지역에서 주로 7~10월에 미세먼지 농도가 낮게 측정되었는데, 입경에 따라 다르나, 큰 입자의 경우 농도 감소율이 최대 20%였으며, 작은 입자의 경우에도 최대 10%가량 농도가 감소하였다(남산, 관악, 기장, 태안 지점). 이는 식생 활동이 활발해지는 여름철(7~10월) 잎면적의 증가로 숲의 오염물질 흡수, 흡착, 침적 등의 영향이 컸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아직은 초기 단계이지만 한국에서 구축한 도시숲 관측 네트워크를 통해 얻어진 ‘실측’ 자료는 도시숲의 미세먼지 저감에 대한 미스터리를 푸는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사실 도시숲의 미세먼지 저감에 대한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 아직 많이 부족한 상황이기에 우리가 쌓아가는 자료의 가치는 국제사회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리고 지금 사우디아라비아처럼 도시숲을 가꾸려고 하는 국가들에는 반드시 필요한 정보가 될 것이다. 중동의 모래바람은 그 어떤 미세먼지보다 강하며 기후변화는 그들의 미세먼지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어제의 경쟁자였지만 그들이 꿈꾸는 미래를 위해 한국의 경험과 지식을 나누어 준다면 어쩌면 내일은 그들이 우리의 최고의 동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전 세계인이 두바이에 모여 찾고 있는 지구의 미래를 위한 해법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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